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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 May 11. 2022

사랑의 찬가

르네상스. 샹송(Chanson)

“푸른 하늘이 우리 위로 무너져 내리고, 땅이 무너진다고 해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아침마다 사랑이 넘쳐흐르고 당신 손길에 내 몸이 떨리는 한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중략--

당신이 죽어서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아무 문제없어요. 나 또한 죽을 테니까,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는 거예요. 거대한 하늘 아래서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아래서, 내 사랑 우리가 서로 사랑함을 당신도 믿으시죠, 사랑하는 연인들을 신께서 다시 만나게 해 주실 거예요.”


샹송의 여제라 불리는 에디트 피아프(E. Piaf, 1915-1963)의 비행기 사고로 죽은 연인을 기리기 위해 작곡한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의 노랫말 일부이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대목에서 가슴이 찡하다.


피아프의 샹송 〈사랑의 찬가〉를 듣고 있자니, 800여 년 전 프랑스 출신의 음유시인(trouvere) 베라나르 드 뱅타로른(B. de Ventadorn, 1130년경-1200년경)의 샹송 〈종달새가 날갯짓을 보았노라〉(Can vei la lauzeta mover)가 생각난다. 비록 〈사랑의 찬가〉와 같은 감정은 느낄 수 없이 덤덤하게 노래하지만, 노랫말에서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Can vei la lauzeta mover                       

종달새가 날개를 치며

de joi sas alas contra.l rai,                  

 햇살을 향해서 올라가네,

que s’oblid’ e.s laissa chazer                그리고는 기절할 듯이 떨어지네,

per la doussor c’al cor li vai,               

그것은 가슴 가득한 행복 때문이라네,

ai! tan grans enveya m’en ve                

아! 무엇이 부러울 것인가,

de cui qu’eu veya jauzion,                     

사랑의 기쁨을 가진 사람들이

meravilhas ai, car desse                        

놀라운 것은 욕망으로 마음이

lo cor de desirer no.m fon.                   

 바로 녹아버리지 않는다는 바로 그것.


Ai las! tan cuidava saber                      

아아! 사랑이라면 모두 다 잘 아는 줄 알았건만

d’amor, e tan petit en sai,                    

사실은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네,

car eu d’amar no.m posc tener            

절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 사람을

celeis don ja pro non aurai.                 

나는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네.

Tout m’a mo cor, e tout m’a me,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사로잡고

e se mezeis e tot lo mon;                      

나를, 그리고 세상을 차지하고 말았지,

e can se.m tolc, no.m laisset re           

하지만 그녀가 나를 떠났을 때 남겨진 것이라고는

mas dezirer e cor volon.                       

욕망과 갈구하는 마음 오직 그뿐이었네.


프랑스 음악을 대표한 샹송(chanson)의 어원은 “노래”를 의미한다. 프랑스 음악에서 독창이든 중창이든 가사 있는 성악은 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면 넓은 의미에서 샹송이다. 20세기 프랑스 노래를 대표하는 샹송 역시 역사의 끝자락에 있는 샹송이다.


음악이라는 포괄적인 범주에서 협주곡이나 교향곡, 오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음악 장르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해 왔다. 샹송 역시 11세기경 이래 현재까지 시대에 따라 〈사랑의 찬가〉와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와 궁정의 사랑, 영웅담을 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연주 방식, 성부의 짜임새, 선법(mode)이나 장·단조와 같은 음 체계의 변화 속에서도 샹송은 샹송으로 살아남았다.


초기 샹송은 11세기경 북부 프랑스에서 영웅의 공적을 기리는 서사시에 곡을 붙인 샹송 드 제스트(Chanso de geste, 무훈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실제로 샹송의 발전은 남부 프랑스에서였다. 아키텐(Aquitaine) 지역을 중심으로 남부 프랑스에서는 11세기에서 13세기 중반까지 샹송의 초석과 다양한 유형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당시 남프랑스에서 사용한 옥시탕 언어로 쓴 서정시(Occitan lyric poetry)에 노래를 만들었다. 그래서 샹송의 유형은 가사의 내용에 따라 결정되었다. 예를 들어 보르네이(G. de Borneil, 1140-1200년경)의 샹송 〈영광스러운 왕이여〉(Reis glorios)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더 자지 말아라, 밤을 새워야지. 동쪽 하늘에 아침 별이 보이네, 새 날을 가져올 아침 별이, 나는 잘 알고 있지, 이제 곧 새벽이 오리라.”는 새벽에 망보는 사람이나 여인의 새벽 이별의 서정시 〈알바〉(Alba)에 곡을 붙였다. 그러니까 브르네이의 샹송의 유형은 ‘알바’인 셈이다.


이렇게 이 시기에 발생한 샹송은 궁정의 사랑을 노래한 캉소(Canso), 연인 간의 실망을 노래한 데스코르(Descort), 사회의 사건에 대한 풍자나 개인적 울분을 노래한 에뉘(Enueg), 논쟁적인 대화체의 노래 파르티망(Partimen)과 탕소(Tenso), 기사와 양치기 처녀의 이야기를 노래한 파스토렐라(Pastorela), 애도가인 플랑(Planh), 정치적 풍자나 조소의 시에 노래를 붙인 시르방트(Sirventes), 그리고 춤곡에서 발생한당사(Dansa)·발라다(Balada)·

에스탕피다(Estampida)가 있다. 연주 방식은 한 명 혹은 두 명의 가수가 기악 반주에 노래한다. 이 시기에 음악가들을 시나 노래를 짓거나 발견한다는 의미의 트루바두르(troubadour), 즉 음유시인이라고 불렀다. 노래 선율은 마치 시를 낭독하듯이 비교적 담담하다. 그래서 슈베르트나 슈만, 볼프와 같은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가곡(Lied)에서처럼 선율에서 가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가사를 알지 못하면 노래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      


베라나르 드 뱅타로른.

종달새가 날갯짓을 보았노라(Can vei la lauzeta mover)


남부 프랑스에서 발전한 샹송은 12세기 중반에 북부 프랑스로 전파되어 더욱 발전한다. 그러나 대체로 남부 프랑스에서 발생한 샹송의 유형이 그대로 전승되었다. 다만 북부 프랑스에서는 근대 프랑어의 뿌리인 오일어(Langue d'oil: 랑그 도일)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어의 변화에 따라 이름만 바꿔 불렸다. 가령, 남부 프랑스의 알바를 오브(aube)로, 캉소를 샹송(Chanson, 여기서 샹송이라는 이름은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 좁은 의미, 샹송의 뿌리)로, 데스코르는 레(Lai), 에스탕피다는 에스탕피(Estampie), 파르티망은 죄파르티(Jeu-parti), 파스토렐라는 파스투렐르(Pastourelle)로 명칭이 바꿨다. 앞글에서 언급한 베라나르 드 뱅타로른와 같은 북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음유시인들을 트루베르(trouvere)라 불렀다.     


14세기쯤에 샹송은 또 다른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이 시기에 서정시의 내용에 따라 분류했던 샹송의 유형에서 시의 형식에 기초한 샹송의 장르가 발생한다. 이 시기의 샹송은 음악의 구조적인 틀을 확립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샹송은 시의 ‘형식’(form es fixes, 고정 형식 혹은 정형시 형식-우리의 시조나 가사, 창가처럼 시행의 일정한 규칙적인 리듬에 의해 쓰인 시)에 기초한 음악 형식을 갖추게 된다. 음악의 형식이란 초중고 음악 수업에서 배웠던 가요형식이니 3부 형식이니 하는 것을 일컫는다. 14~15세기 중세 후반에 샹송은 춤에서 유래한 롱도(Rondeau), 비를레(Virelai), 발라드(Ballade)와 같은 각각의 고유한 구조가 특징인 유형도 있었다. 샹송이 이렇게 다양한 유형이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기욤 드 마쇼의 8행 구조의 고정 형식 롱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얼굴”(Doulz viaire gracieus)


1. Doulz viaire gracieus,          

아름답고 매력적인 얼굴,
 2. de fin cuer vous ay servi.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섬겼어요.
 3. Weillies moy estre piteus,      

만약 당신 나를 가엾게 여긴다면,
 4. Doulz viaire gracieus,         

 아름답고 매력적인 얼굴,
 5. Se je sui un po honteus,      

그러면 나는 수줍을 거예요,
 6. ne me mettes en oubli:        

나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7. Doulz viaire gracieus,          

아름답고 매력적인 얼굴,
 8. de fin cuer vous ay servi.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섬겼어요.


이 시기의 샹송의 또 다른 특징은 3성부 혹은 4성부의 무반주 합창 연주 방식인 아카펠라(a cappella)이었다. 대표적인 샹송 작곡가로는 프랑스 부르고뉴와 벨기에 출신의 기욤 드 마쇼(G. de Machaut, 1300-377), 기욤 뒤파이(G. Dufay, 1397-1474), 질 뱅슈아(G. Binchois, 1400-1460)가 있다.


15세기 중반, 음악에서도 르네상스 시대(1450년경-1600년경)가 도래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중세의 교조주의적 음악 양식은 헐거워졌다. 따라서 기독교 음악의 세속화와 속세의 음악이 더욱 풍부해졌다. 특히 프랑스의 세속 장르인 샹송은 기독교 음악의 세속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 성당에서 미사를 진행할 때 사용했던 미사용 음악은 기존의 단성 ‘성가’를 혼성 합창곡으로 편곡하는 방식이었다. 중세 시대에 세속 음악을 기반으로 신성한 미사곡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특별한 축일을 위해 작곡된 미사곡 중에 당시에 유행했던 ‘샹송’ 곡을 인용해서 만들었다. 가령, 기욤 뒤파이의 〈미사 무장한 인간〉(Missa L'homme arme Super voces musicalel)은 작가 미상의 샹송 ‘무장한 인간’(L'homme arme)을 테너 성부에 차용해서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사곡에 붙어 있는 제목은 샹송이나 성가에서 차용한 제목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샹송이 가장 완고했던 기독교 전례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그만큼 샹송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는 이미 유럽에서 문화예술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었고, 따라서 당시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지역에서 활용하던 음악가들은 당연히 미사용 전례음악과 궁정 음악에 최고의 권위자였다.

요한네스 오케겜(J. Ockeghem, 1420경-1495), 앙트완느 뷔누아(A. Busnois, 1430경-1492), 야콥 오브레흐트(J. Obrecht, 1450경-1505), 알렉산더 아그리콜라(A. Agricola, 1446-1506), 조스캥 데 프레(J. des Pres, 1450-1521), 하인리히 이삭(H. Isaac, 1450경-1517), 루아제 콩페르(L. Compére, 1450-1518), 장 무통(J. Mouton, 1459-1522), 피에르 드 라 뤼(P. de la Rue , 1460-1518), 아드리안 빌라르트(A. Willaert, 1480 혹은 1490-1562), 니콜라 공베르(N. Gombert, 1490-1556), 클레멘스 논 파파(C. Non Papa, 1512-1555 또는 1556), 자크 아르카델트(J. Arcadelt, 1505-1568), 치프리아노 데 로레(C. de Rore 1515-1565), 야콥 베르들로(J. Verdelot, 1470 또는 1480-1552), 오를란도 디 라소(O. di Lasso 1532-1594). 이들은 클래식 애호가들조차 생소한 음악가들이겠지만, 르네상스 시대 음악의 부흥을 이끌었던 프랑스와 벨기에 지역 출신의 음악가였다.



생각해보면 인본주의 사상이 짙게 물들어가던 르네상스 시대에 사랑을 노래하는 샹송의 부흥은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장르 마드리갈(Madrigal)만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프랑스 문화권의 많은 음악가가 샹송을 작곡했는데, 특히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평가받는 조스캥 데 프레의 샹송 〈수천 번 후회〉(Mille regretz)는 당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었다고 한다.


Mille regretz de vous abandonner  

 당신을 저버린 것에 수천 번 후회하고

Et d'eslonger vostre fache amoureuse,  

그리고 당신의 사랑스러운 얼굴 뒤에 남아있는,

Jay si grand dueil et paine douloureuse,

너무 큰 슬픔과 상당히 고통스러운 고뇌를 나는 느끼고,

Quon me verra brief mes jours definer.

나의 날들은 곧 줄어드는 것이 나에게 보입니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끌레망 잔느캥(C. Janequin, 1485-1558)과 끌로댕 드 세르미시(C. de Sermisy, 1490-1562)의 주도 아래 파리풍의 묘사적인 샹송이 유행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파리에서 유행했던 샹송은 다성 합창(Polyphony)의 짜임새로 새소리, 사냥할 때의 외침, 거리의 소음, 전쟁의 대포 소리나 무기 부딪히는 소리를 묘사했다. 묘사적 샹송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끌레망 잔느캥의 〈전쟁〉(La guerre)과 〈새들의 노래〉(Le chant des oisequx)가 유명하다.


잔느캥과 세르미시의 뒤를 이어 기욤 코틀레(G. Costeley, 1531-1606)와 자크 모뒤(J. Mauduit, 1557-1627)가 르네상스 후반의 샹송 음악을 이끌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오페라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부상하면서 샹송과 같은 성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루트와 같은 발현 악기의 반주에 독창 방식으로 노래하는 ‘주연(酒宴)의 노래’(chansons pour boire)가 유행하기 했다. 19세기에서 독창 음악은 비교적 18세기보다 활성화되지만, 그 영광의 자리는 샹송이 아닌 예술가곡(Mélodie)이 대신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샹송은 카페나 카바레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샹송, 즉 파리의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의 삶을 노래하는 장르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샹송의 여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Chanson은 ‘노래’를 의미한다는 정의만으로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생산하고 담고 있었다. 오히려 샹송은 (          )의 ‘노래’(Chanson)이다. 즉 절도 있는 박자·명쾌함·절제된 선율과 감정 표현이 특징인 프랑스 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노래’, 떠돌이 음악가와 궁정 음악가의 ‘노래’, 무반주 다성 합창 방식의 ‘노래’, 귀족의 사랑 ‘노래’, 대중의 ‘노래’이다. 그리고 현재 샹송은 프랑스 국민 음악(Chanson Française)으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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