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노란 의자 위의 파괴자

by 동상

내가 흑막들과 동일하게 '일어서기'에 성공함에 따라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다른 걸 잡을 필요 없이 어디서든 일어설 수 있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까지 흑막들이 몰래 숨겨서 보지 못했던 물건들도 볼 수 있었고 그것들 중 몇몇은 내 손에 닿기도 했다. 가장 좋은 점은 흑막들이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시간에서 그들 모르게 일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흑막들도 처음엔 '일어서기'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안일하게 감시만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언제까지나 그들이 쳐놓은 흰 벽 안에 순순히 갇혀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그들이 장난스럽게 가르쳐 준 문 열기를 지독하게 연습했다. 그들이 가르쳐준 비밀스러운 패턴을 따라 하기 위해 손잡이를 입으로 물어도 보고 침을 묻혀보기도 했으며, 당겨보기도 하고 밀어 보기도 했다.


나는 그들과 똑같이 손잡이를 위로 올린 다음 문을 밀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힘이 부족해 문이 열리지 않는 거라 착각해 나의 거대한 머리까지 동원해 밀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선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알아차려야만 했다. 나는 손잡이를 올리는 것조차 흑막들에게 속은 줄 알았지만 그 생각조차 흑막들의 사악한 속임수였다. 손잡이를 올리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내가 문을 밀기 위해 손잡이에서 손을 놓으면 어느새 손잡이는 제자리로 돌아와 문을 굳게 닫히게 만들었다. 문을 열기 위해선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들어 올리고 왼손으로 문을 미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 끝에 나를 가로막았던 문을 여는 공식을 드디어 터득했다.


몽환적으로 피어나는 새하얀 연기와 함께 섬뜩하게 빛나는 날카로운 철로 '탁탁탁' 소리를 내며 중독적인 음식을 만드는 여흑막과 씻기 위해 다른 방으로 간 남흑막의 느슨한 감시를 피해 난 이때까지 나를 가둔 흰 감옥의 문을 열고 탈출했다.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 신중히 고민한 결과 내가 멀리까지 가는 건 다시 돌아올 남흑막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난 흑막들이 나를 감시하던 길고 커다란 노란 의자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들이 어떤 시각과 시선으로 나를 감시하는지만 알면 탈출은 더욱 쉬워질 터였다.


난 베개를 넘으며 단련된 올라타기로 낑낑거리며 올라가기를 시도했다. 나의 짧은 다리가 의자 위로 닿지 않아 몇 번이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단 생각에 필사적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했고 내 몸은 어느샌가 높은 의자 위에 올라와 있었다.


지친 몸을 쉴 겸 내가 갇혀 있던 흰 감옥을 바라보니 역시 그곳에서는 한눈에 모든 게 보였다. '역시 감옥 안에선 그들의 감시를 벗어날 순 없겠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를 통해 흑막들과의 산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맑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난 곧장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지만 유리까지의 거리도 멀뿐만 아니라 유리는 내 키보다도 훨씬 높이 있어 불가능해 보였다.


노란 의자 옆에는 구불구불한 갈색 막대에 초록색 끈들이 무성하게 달려 있었다. 내가 감옥 안에서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때 종종 보이던 그 끈이었다. 언제나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던 끈이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거 같아 재빨리 엉금엉금 기어서 다가갔다. 혹시나 남흑막이 "아 뜨거워." 소리치며 나에게 만져보게 하는 컵이라는 물건처럼 위험할 수 있으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먼저 입으로 침을 묻혀보았다. 별다른 이상이 없어 입으로 넣어보니 그다지 맛있진 않았다. 씹으면 다를지 몰라 냠냠해보았지만 역시나 쓰기만 했다. "퉤퉤"


손을 뻗어 초록색 끈을 살짝 잡아보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과감히 있는 힘껏 잡아당겨보니 버티던 끈이 막대에서 툭 떨어져 나왔다. 난 떨어져 나온 끈을 살펴보다 다른 끈도 한번 잡아당겨보고 두 개의 끈을 동시에 당겨보기도 했다. 남흑막이 다시 돌아온 것도 모르고 호기심에 빠져 계속해서 끈을 잡아당겼다. 그런 내 모습과 수북이 떨어져 있는 초록색 끈을 목격한 그는 놀라 소리쳤다. "디제이 그러면 안돼." 벼락같은 그의 큰소리와 발각됐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 응애"


사고도 내가 치고 우는 것도 내가 하니 정작 울고 싶은 흑막들은 기가 막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허허"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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