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혼자 일어서지는 못하지만 무언가의 도움으로 난 일어설 수 있었고 그것은 곧 나의 힘이 되었다. 나를 줄곧 좌절시켰던 만만하게 생각했던 종이벽은 더 이상 나를 막지 못했다. 나는 원망스러운 종이벽을 짚고 일어나 온몸에 힘을 실어 밀어젖혔다. 나의 포동한 팔의 힘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았던 그 벽은 나의 몸무게는 버터지 못하는지 결국 쓰러졌다. 다만 나도 같이 종이벽과 넘어져 생각지도 못한 아픔에 울었을 뿐이다. "응애 응애"
흑막들도 더 이상 종이벽이 나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종이벽을 쓰러트린 바로 다음날 또 다른 절망의 벽을 가지고 왔다. 그 벽은 감정이 없는 듯 새하얗고 종이벽 5개는 겹친 듯 무척이나 두꺼웠다. 남흑막은 그 벽을 연마하듯 먼지 하나 없이 축축한 천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닦았고 여흑막은 잘 닦였는지 검사까지 했다. 그런 하얀 벽들이 하나하나 모여 나를 가두는 새로운 감옥이 되었다.
내 어깨보다 큰 높디높은 벽을 처음 봤을 땐 만만했던 종이벽과 달리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기껏 힘들게 종이벽을 쓰러트리자 말자 더 거대한 벽이 나를 가로막는 상황은 굳은 결심을 했던 나조차 손에 쥔 딸랑이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보기완 다를 수 있다는 헛된 기대에 두꺼운 벽을 짚고 일어서 내 체중과 포동한 팔의 힘을 힘껏 실어 밀어 보았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도 쉽게 포기하진 않았다. 쓰러트리진 못하더라도 벽을 넘어서라도 탈출하려 했지만 내 어깨보다 높은 절망의 벽을 넘기엔 내 아장한 다리는 토실토실한 엉덩이 위로 올라가지 않아 벽을 넘기엔 어림도 없었다. 유일하게 흑막들보다 큰 머리로도 밀어 보았지만 머리만 쓰리게 아플 뿐이었다. 흑막들은 그런 날 바라보며 더 이상 감시가 필요 없다는 듯 다른 일을 해서 날 비참하게 만들었다.
흑막들은 사악했다. 희망이 없어 축 쳐진 나에게 불쌍하다는 듯 새로운 먹이를 던져줬다. 그 절망스러운 벽에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은밀한 문이 있었다. 흑막들이 방에 들어갈 때처럼 문을 밀면 어서 지나가라는 듯 스르륵 벽이 밀렸다. 하지만 그 문도 누구에게나 열려있진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선 비밀스러운 암호가 필요했다. 흑막들은 나에게 보란 듯이 복잡한 동작들을 한 후 문을 열어젖혔다. 흑막들이 나를 무시하듯 여러 번 보여줬지만 나의 귀엽기만 한 짤막한 손은 그들의 동작을 따라 할 수 없어 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하하"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문을 열었고 자랑이라도 하듯 문을 열어둔 채로 나를 그 앞에 앉혔다. 한심한 나와 얄미운 흑막들에 대한 분노로 열려있는 문이 괜히 미워 보였다. '너 미워.' 난 심술궂게 문을 힘껏 밀쳤다. 그런데 웬걸 이 괘씸한 문이 복수를 하듯 나의 머리를 때렸다. 난 너무나 열이 받아 더 쌔게 손을 휘둘렀다. 문도 그런 내가 미웠는지 처음보다 더 쌔게 나를 때렸다. 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하여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지만 그 모습을 보던 흑막들은 기괴하게 웃을 뿐이었다. "깔깔깔"
문조차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서글펐지만 난 다짐했다. '내일은 반드시 저 암호를 풀고 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