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들은 오늘도 분주하다. 특히 오랜만에 남흑막이 돌아오는 날이면 여흑막은 그동안 혼자 나를 감시하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 해치워 버리겠다는 냥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도 나를 감시하지 않고 오랫동안 놀다 와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는 없었을 때 못했던 모든 걸 짧은 시간에 다 만회하려는 지 책도 여러 권 가지고 와서 나를 앉혀 놓고 긴 시간 동안 나를 세뇌시켰다.
세뇌가 끝나자마자 기어서 도망가려는 내 앞에 그는 장난스럽게 초록색의 베개를 던져 놓아 방해했다. 많은 훈련으로 단련된 나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넘어갔지만 남흑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른 베개를 가지고 내 앞을 막았다. 나는 그것 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내가 이전에 넘었던 증오스러운 초록색 베개였다. 나도 작전을 바꿔 옆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남흑막은 이미 나를 파악한 듯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막아섰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베개의 늪에 허우적거리다 결국 지쳐 쓰러졌다. 난 남흑막의 괴롭힘에 분해 울어 버렸다. "응애 응애"
여흑막은 내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중독시키는 음식과 음료가 만들어지는 곳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액체가 담긴 커다란 철 그릇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경건한 자세로 나의 음식과 음료가 담겨 나오는 투명한 병을 기다란 집게로 잡아 천천히 위험해 보이는 액체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달그락달그락" 내 심장을 조여오는 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어디 안 들어간 곳이 없는지 꼼꼼히 검사하고는 다른 그릇도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그녀는 그릇에 있는 한 방울의 액체가 닿는 것도 두려운 듯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에 중독되는 이유가 바로 저 주술 때문일 거야.'
난 두려워져 보기 싫었지만 반면에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두 마음 중에 갈팡질팡하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서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새하얀 감옥 앞으로 갔다. 눈앞의 감옥은 언제나 그렇듯 멀뚱히 서 있어 내가 엿보는 걸 방해했다. 평소처럼 그걸 잡고 일어서면 되겠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소리로 분명 그녀가 알아차리는 것은 자명했다. 드디어 오랜 시간 연습했던 '그 동작'을 시도해 볼 때가 왔다. 난 실패할 경우도 대비해 감옥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과거에는 그토록 어려웠던 '앉는 자세'를 했다. 토실토실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선 통통한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다리는 부들부들 떨려왔지만 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힘내 내 다리야.' 누워 있을 땐 쉽게 펴졌던 다리는 세상의 모든 짐들을 짊어진 듯 펴질 줄 몰랐고 흑막들이 잡아당기는 듯 내 기저귀는 무겁기만 했다. 내 머리가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쉬웠을 거 같지만 지금까지 나를 도와준 고마운 큰 머리를 버릴 순 없었다. 난 입을 앙 깨물며 젖병을 빨 힘까지 모두 모아 처절하게 다리를 펴기 시작했다. 펴질 줄 몰랐던 다리가 끝내 항복하듯 쭉 펴졌다. 그렇다. 드디어 난 일어서기에 성공했다.
너무나 집중해서인지 흑막들이 어느새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해 내가 일어선 것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과 같이 일어서 있다는 사실에 놀라 바보같이 입을 한껏 벌리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는 어딘가 이 사실을 빨리 보고해야 하는지 손에 들고 있던 한쪽만 빛나는 작은 철상자로 나를 가리키며 철상자를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눈부신 섬광과 함께 무수한 소리가 빠르게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난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던 상관하지 않고 나의 성취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드디어 흑막들과 동일한 선상에 섰다.' 멀게만 느껴졌던 탈출이 이 순간만큼은 가깝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