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화 각선자 동지의 방문

by 동상

여흑막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잘 정돈된 물건들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굉음을 내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빨아드리는 쇠기둥을 가지고 바닥에서 빛이 나도록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자 방으로 들어가더니 싸움을 준비하는 닭처럼 눈에는 검을 색을 입에는 붉은색을 진하게 칠하고 깃을 펼친 공작새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나왔다. 검은 삼촌이 왔을 때의 부산함이 또다시 느껴졌다. 그때와 다른 점은 남흑막이 없다 뿐 모든 상황이 비슷했다. '오늘 검은 삼촌이 다시 찾아오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


내 예상처럼 누군가가 찾아왔지만 방문자는 내 예상과 한참이나 벗어났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새로운 여흑막이었다. 코드네임 '해민'이라 불리는 이 여흑막도 전투적인 진한 색을 얼굴에 칠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옷을 입어 기존의 여흑막 못지않게 단단히 준비하고 온 듯했다. 검은 삼촌이 찾아왔을 때의 남흑막처럼 여흑막은 환한 미소로 해민을 맞이했다. 검은 삼촌처럼 혼자인 줄 알았던 해민의 품속에는 놀랍게도 나와 같은 작은 사람이 쏙 안겨 있었다.


해민은 나의 옆에 그를 두고는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 해민 이모야." 여흑막은 그녀를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큰 소파로 안내했다. 그곳은 우리를 한눈에 감시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였다. 나의 감시자는 아침부터 준비해 둔 정체 모를 조그마한 음식과 흑막이라면 하루에 한 번은 꼭 마셔야 하는 약인 듯한 검은 물을 소파 앞 작은 식탁에 차려놓았다. 둘은 조금 먹는가 싶었지만 어느새 음식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남흑막과의 대화도 적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해민과의 대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들의 비밀스러운 대화는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뭐가 그토록 재밌는지 연신 기괴한 소리로 웃어댔다. 남흑막과의 대화를 기준으로 한번, 두 번, 세 번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질 듯 끝나지 않았다.


나와 작은 사람은 그녀들의 이야기 속에 방치되어 있었지만 그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있는 나의 장난감을 가지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탈출을 위해 나보다 더 노력했는지 몸도 크고 팔다리도 굵었다. '나도 더욱 분발해야겠어." 그는 관찰하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심했는지 난 아직 하지 못하는 두발 서기를 한 그(각선자)는 나에게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이 다가오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의 두 눈이 아주 가깝게 마주치자 그는 나를 따스하게 꼭 안아주었다. 마치 감금된 나의 상황을 공감하여 위로해 주는 듯한 그의 포옹에 난 울컥 울음이 쏟아졌다. "응애 응애" 이야기 속에 빠져 있던 여흑막과 해민은 그 울음소리에 놀라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본인 멋대로 해석한 해민은 나를 달래며 말했다. "형아가 좋아서 안아준 거야." 그도 예기치 못한 나의 울음에 당황했는지 나에게서 떨어져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심 나도 그에게 다가가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나의 울음으로 서먹해진 우리는 조금 떨어져 각자 장난감으로 훈련을 하며 곁눈질로 서로를 의식만 하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녀들의 대화가 열 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했으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정보가 있는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해민은 이제 떠나야 하는 듯 가지고 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챙기고는 내 장난감을 물어뜯고 있는 작은 사람을 안아 들었다. 가기 싫은 표정을 한껏 지으며 해민은 여흑막에게 인사했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작은 사람도 여흑막에 안겨 있는 나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빠빠" 그의 눈빛에서 나를 격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한동안 나에게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가 아닌 많은 동지들이 거대한 흑막에서 탈출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인 걸 깨달았다. 그도 나도 아직은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흑막에서 탈출할 것이다. 언젠가 나도 그처럼 더 커지면 다른 동지를 만나러 갈지 모른다. 그때 나도 나보다 작은 이를 안아주고 격려해야지. '동지여 거기 있는가? 나는 아직 탈출하려 노력하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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