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화 삐뚤어진 마음

by 동상

나는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와 같이 갇혀있던 사람들과 거의 모든 점에서 비슷했다. 자그마한 몸, 작았던 울음소리, 쪼글쪼글한 피부 등 다른 점이 없었다. 도리어 다른 사람보다 작았던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나의 머리에 있는 털이었다. 나의 주변에는 아예 없어 맨 살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털이 있지만 듬성듬성 빈 곳이 많은 이도 있었다. 난 다행스럽게도 고르게 많은 털이 내 머리에 나 있었다. 내가 손을 뻗을 수 있게 되면서 머리 뒤에는 털이 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채워져 있었다.


부끄러워 표현은 안 했지만 머리털은 나의 하나뿐인 자부심이었다. 이런 자부심은 기특하게도 무럭무럭 자랐다. 고통스러운 운동으로 단련하지 않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아도 내 머리털은 쑥쑥 자라났다. 또한 머리털 사이사이에 새로운 털들이 자신의 존재도 있음을 알리듯 파릇파릇 자라나 어느새 내 머리털은 풍성해졌다. 나의 몸을 검사했던 하얀 옷의 감시자보다 내가 더 많아 보였다. '드디어 흑막보다 내가 더 많은 게 생겼군.'


시간이 흐르고 나면 머리털이 아주 긴 여흑막은 이기긴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짧은 머리털의 남흑막 정도는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난 나의 자부심과 행복을 숨겼어야 했다. 흑막들은 행복한 나에 대해 알아차렸는지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흑막들의 계략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행사인 목욕을 위해 남흑막이 나를 물이 나오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갑자기 여흑막이 불쑥 들어왔다. '남흑막이 있으면 안 왔는데 웬일이지?' 난 이상함을 느꼈지만 불안한 눈빛으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고 여흑막의 손에 무언가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쥐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단단하고 한쪽은 날카롭게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나의 머리 위쪽에 자리한 여흑막은 남흑막이 나를 잘 안고 있는 것을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을 작동시켰다. "윙~윙~" 그것은 듣기 싫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흑막은 그 무서운 물체를 내 머리에 갖다 대었다. 내 머리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한번 놀랐고 속절없이 떨어지는 내 자부심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물체는 내 풍성했던 머리털을 무자비하게 밀어버렸다. 여흑막은 꼼꼼하게 긴 털 하나 없이 밀기 시작했다. 난 너무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응애"


흑막들은 나의 울음은 간단히 무시한 채 결국 내 머리털을 다 밀어버렸고 바닥엔 떨어져 버린 내 자부심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가닥도 아쉬운 나의 자부심을 지켜볼 새도 없이 여흑막이 뿌리는 물에 휩쓸려 사라져 갔다. 어안이 벙벙하고 당혹스러운 목욕이 순식간에 끝났다. 난 눕기 무섭게 얼른 내 머리털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여기를 만져도 까끌까끌, 저기를 만져도 까끌까끌한 촉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부드럽고 길었던 내 자부심은 파괴되어 일순간에 처음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 자부심을 돌려놔.' 난 허무하기 그지없는 마음속 외침을 지를 뿐이었다.


흑막들은 내가 자부심을 가지거나 행복한 것을 두고 볼 수도 없다는 듯이 참람한 일을 저질러 버렸다. 난 결심했다. '삐뚤어질 테다.' 나의 삐뚤어진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바지에 과감히 손을 넣고 불만을 한껏 드러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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