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소와 달리 부산스러웠다. 저녁에나 하던 청소를 아침부터 하기 시작했다. 어질러져 있던 물건들은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밖을 나가기 전에는 씻지 않던 흑막들도 웬일인지 머리부터 발 끝까지 깨끗하게 씻었다. 난 여흑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흑막의 얼굴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칠해져 완전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보고서야 여흑막이란 걸 알아차릴 만큼 많은 게 변해 있었다. 여흑막의 눈과 입은 평소보다 선명해 보였다. 그런 여흑막을 처음 봤을 땐 다른 사람이 찾아왔는지 알고 생소함에 울어버렸다. "응애 응애"
입고 있는 옷도 달랐다. 흑막들은 편해 보이지만 후줄근한 옷을 자주 입었지만 오늘은 색도 선명하고 날렵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옷을 입고 나를 안으니 까끌까끌한 옷의 촉감에 기분이 나빠졌다. 보기에는 좋지 않았던 후줄근한 옷이 그리워졌다. 흑막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며 난 생각했다. '누군가와 싸우려고 그러나?'
남흑막의 휴대폰이 울려 퍼졌다. "어디쯤인데? 그래 올라 와." 남흑막이 휴대폰을 통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조금 뒤 음악이 울려 퍼졌다. "삐리리리" 그 소리를 들은 남흑막은 무거운 철문을 열어 누군가를 맞이했다. 남흑막과 같이 온 사람의 첫인상은 무척 거대했다. 크다고 생각했던 남흑막이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또 하얀 흑막과 나와 달리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어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불안한 나와 달리 남흑막은 검은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고 여흑막도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그 사람도 흑막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로 다가왔다. 난 주변이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얼어붙었다. 그런 나를 검은 사람이 번쩍 들어 올려 넓은 품으로 안았다. 남흑막이 뻣뻣하게 안겨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삼촌이야. 삼촌."
무서웠던 첫인상의 삼촌은 내가 좋은지 환하게 웃었다. 내가 무겁지도 않은지 두꺼운 팔로 들었다 내렸다 하거나 옆으로 힘차게 흔들었다. 삼촌의 품은 여흑막의 포근함과 남흑막의 즐거움이 같이 있었다. 또한 나를 향해 이상한 소리도 냈다. "까꿍 까궁" 긴장으로 뻣뻣했던 나는 어느새 즐거워져 방긋 웃고 있었다.
한참을 나를 안고 웃겨주던 삼촌은 여흑막이 아침부터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잠시 동안 흑막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남흑막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왜 나와 여흑막은 남겨두고 남흑막하고만 방으로 들어가지?' 둘이 들어간 방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쿵쾅쿵쾅" "드르륵 드르륵" 한참 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삼촌과 남흑막은 방에서 나왔다. 둘은 방에서 무언갈 열심히 했는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여흑막은 미안한 표정으로 지친 둘에게 시원한 음료를 주었다.
그들이 나온 방에는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내가 자던 침대를 4개쯤 붙여 놓아야 비슷할 정도의 크기였다. 여흑막은 그 침대에 나를 눕히며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서 자는 거야." 내가 점점 더 커지기도 하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해서 쓰던 작은 침대로는 더 이상 나를 가둘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역시 이 침대에도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예전보다 더 높이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역시 좋은 사람은 없었던 거야.' 나와 놀아주던 삼촌도 흑막과 똑같이 나를 감금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일을 끝낸 삼촌과 남흑막은 간단히 씻고는 신속한 동작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남흑막은 여흑막에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가 고생했으니 맛있는 거 좀 사주고 올게." 말을 하는 남흑막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때까지 본 남흑막의 얼굴 중에서 제일 기쁜 표정이었다. 남흑막 옆에 있던 삼촌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여흑막도 쉽사리 인정한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래 재밌게 놀다가 와." 둘은 누가 잡으러 오는 것처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남흑막은 내가 잘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난 그 둘이 참 수상쩍었다. '침대 설치가 목적일까? 아니면 둘이 노는 게 목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