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화 180번째 밤

by 동상

요즘 들어 여흑막이 이상하다. 혼자 멍하니 있거나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3번을 연달아 울어도 나를 상냥히 달래주던 여흑막은 어디 가고 2번만 울어도 힘들어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동안 내가 너무 괴롭혔나?' 과거에도 간혹 여흑막이 지칠 때면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내가 보기에 여흑막은 지쳐 보이지도 않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예전과 같이 상냥해지지 않았다.


남흑막도 그런 여흑막의 상태를 알아챘는지 조심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내가 기저귀에 응가를 한 것을 눈치채면 은근슬쩍 딴짓을 하거나 도망가던 남흑막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내가 응가를 위해 얼굴이 붉어지기만 해도 남흑막은 내 옆으로 와 대기하고 있다가 빠릿빠릿하게 뒤처리를 했다. 여흑막이 지시를 해야만 하던 청소도 해야 하는 시각만 되면 남흑막이 벌떡 일어나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여흑막은 남흑막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남흑막이 전혀 입지 않을 여러 벌의 단정한 옷과 검은색의 신발, 내가 씻을 때 쓰거나 씻고 나서 바르는 작은 통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다른 장소에서 이곳과 같이 생활해도 될 정도였다. 하나하나 물건이 늘어날 때마다 여흑막의 근심도 늘어나는 것처럼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평소와 같이 해님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달님이 찾아왔을 때 남흑막이 나를 씻겨 주고는 밖에서 기다리는 여흑막에게 나를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남흑막은 평소처럼 소파에 앉지 않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여흑막이 내 몸에 있는 물기를 닦아내고 미끌미끌한 액체를 꼼꼼히 바르고 나서 잠을 위한 옷을 다 입혔을 때 남흑막이 방에서 나왔다. 남흑막은 밖에 나가려는 듯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나를 병원에 데려가려나?'


두 손에 무거운 짐과 등에 커다란 가방을 둘러맨 남흑막을 바라본 여흑막의 눈은 촉촉이 물들어 있었다. 여흑막은 조용히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혼자 어떻게." 남흑막은 아무 말 없이 그런 여흑막을 한동안 안아줬다. 여흑막과의 포옹이 끝난 남흑막이 혼자 멀뚱멀뚱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 다가와 똑같이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남흑막은 혼자 철문을 향해 가며 말했다. "다녀올게." 여흑막은 나를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아빠 조심히 다녀오세요라고 해."


남흑막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여흑막을 여러 번 다시 돌아봤지만 결국 철문을 열고 혼자 나갔다. 난 마지막까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라 생소한 이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남흑막의 입가에 미소가 스친 것 같은데.' 슬픔을 감추기 위해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린 것 같기도, 혹은 철문 밖의 자유를 예감한 것 같이도 한 표정이었다. 설마 이제까지 그렇게 슬퍼하던 남흑막이었으니, 기뻐하진 않았겠지.


남흑막이 떠나가고 여흑막만이 홀로 남아 있었다. 여흑막은 나를 재우려 큰 공 위에서 나를 안고 쓸쓸히 신나는 둥가둥가를 했다. 안겨 있는 나는 편안함에 점점 눈이 감겼지만 달님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흑막의 눈은 남흑막과 함께한 180번의 낮밤을 추억하듯 아련해졌고 혼자 견뎌야 할 181번째 낮이 두려운 듯 눈에는 물이 맺혀갔다. 난 잠이 오지만 잠이 들지 않는 피곤함과 평소와 달리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여흑막이 불만스러워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 응애" 나의 우렁찬 울음과 함께 다른 소리도 조용히 들려왔다. "흑흑"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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