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큰 아이이고, 배경 사진 또한 작은 아이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에 앞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정말 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의 삶이 나의 삶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려 하고 그래서 또 보상받고 싶어지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나의 모든 것, 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화를 내게 될까. 어떻게 강압적인 표현을 쓰고 인상을 구기게 될까.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을 키우는 일이 나를 얼마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내 뜻대로, 내 말을 듣게끔 해야 할 것만 같다.
매일 다짐으로 시작해 반성으로 끝나는 나의 하루가 아이들에겐 어떻게 기억되고 남을까.
부모는 아이들의 슈퍼스타란 말과 아이들은 부모를 몇 번이고 용서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보고 가슴에 새겨두었다. 육아가 힘들어질 때면 꺼내보고 다시 곱씹고 마음을 다잡곤 했는데 큰 아이의 등원거부가 시작된 지지난주부터는 내 마음도 다짐도 뒤죽박죽이었다. 열 번 중 다섯 번은 한숨을 내쉬거나 고개를 도리질했다. 남은 다섯 번 중 한 두 번은 큰소리가 나갔다. 아이의 울음은 길었고 외면할 때도 있었으며 결국 뜨겁게 안아줬다한들, 나 또한 상처받았다. 오늘도 실패했다는 좌절감이 울컥 올라왔다.
아이가 깊이 잠든 밤이면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위안을 받았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아이에게 화를 내놓고 아이로부터 위안받았다. 아이가 나의 전부이듯 아이에게 내가 전부인 것이, 그래서 오늘도 당연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나는 오늘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다짐 하나를 더 했다. 오늘부터 그 어떤 육아서도 보지 말아야지. 육아서를 쫓아하려다 도리어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내가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을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올바르게 키우고 싶은 희망이 있다. 틀리지 않은 마음으로,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고 대한다면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필요도 없이 이해하고 보듬는 관계가 되어있지 않을까.
소망한다.
나의 모든 것인 아이들이 넘치는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를.
그래서 나도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