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이 가져다주는 것들

by 향작

작은 아이 첫 생일을 앞두고,

잔치랄 것도 없지만 어떤 의무와 함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라고 이름 붙이기엔 민망할 정도로 운동보단 굶기요, 굶는 것은 귀찮음이 파생한 행위로 지금 내게 가장 알맞은 살 빼기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는 원하는 체중까지 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곧 운동을 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나와 남편은 얼마간 야식을 끊었다.


오늘은 넷플릭스에 길복순이 공개된 날이고 금요일이다.


첫 시작은 금요일이니까,

길복순이 공개 됐으니까

치킨 안 먹은 지 오래니까,

냉장고를 여니 맥주도 없네.


그렇게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기 위한,

아니 그냥 치킨을 위한 치킨을 시키며 맥주를 곁들였다. 넷플릭스 길복순도 아니고, 그냥 가벼이 먹고 마시고 보고 수다 떨 채널을 틀고 목적과는 정 반대되는 것들을 금요일 밤에 한다.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방에서 자고 있을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방에 켜 둔 자장가가 멈춘 듯하면 다시 재생을 해두고, 하나 중요할 것 없는, 내일이면 잊어버릴 대화를 이어나간다. 어울리지 않게 남긴 치킨을 통에 담고 맥주는 깡그리 마셔 없앤다.

상을 치우면서 남편이 큰 아이가 유독 귀여운 요즘을 얘기하고, 나는 아이들이 다 큰 뒤엔 어쩐지 쓸쓸하고 아쉬울 것 같다는 대답을 돌려준다.

지금까지 육아를 하면서 사실, 아이들이 천천히 자라길 바란 적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귀하단 걸 알면서도 언제나 얼른 자라서 각자의 삶을 살기를, 내가 책임져 주는 틀을 벗어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두 아이의 귀여움, 가령 노래 가사를 줄줄 외워 부르는 큰 아이라든지 막 걷기 시작한 스스로가 대견한 듯 박수를 치며 걷는 작은 아이의 모습같은 것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훌쩍 커버린 어떤 날의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이가 천천히 컸으면 싶다. 지금 느낄 수 있는 예쁨을 좀 더 오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이고 아이는 아이임에도, 이 아이가 나를 위해 예쁜 것이 아님에도, 마치 나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부질없게 천천히 커주기를.., 잠깐 바라게 된다.



맥주를 마셔서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큰 소망을 품고, 너무 진지한 감상에 빠진다. 내일이면 꽃구경을 가기로 했고, 두 아이와 함께하는 외출은 고단할 게 분명한 터라 언제 이런 생각을 했는가 싶겠지만 어쨌든 금요일에 길복순 아니고 맥주가 가져다준 시시한 생각들이 대체로 이러하다.


이 아이들의 엄마란 사실이 대체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