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먼지 쌓인 서재가 있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연습

by 향작


다음 달이면 남편과 결혼한 지 4주년이 된다.

이미 37개월과 16개월 두 아이의 엄마라 결혼 4주년이라는 사실이 거짓말인 것 같다. 10년은 족히 되고도 남게 느껴진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꾸미며 방 한 칸은 오로지 나만의 공간, 서재로 꾸몄다. 당시엔 조금 욕심이었던 책상과 책장을 사들였고 친정에서 가져온 책들을 칸칸이 꽂았다. 너무 만족스러웠고 드디어 꿈을 이룬 것만 같았다. 그 서재도 4주년이 되었다. 오늘은 그 서재를.., 한동안 '창고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던 서재를 청소했고 지금 그 방, 그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서재가 '창고방'이라는 오명을 입게 된 건 결혼을 하자마자 찾아온 첫 아이와 첫 아이 13개월 차에 불현듯 생긴 둘째 아이로 인해 내 인생에 육아라는 새로운 바람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재에 먼지가 쌓이는 동안 마냥 내버려 둔 일을 두 아이'때문'이라고 한다면 곤란하고 속상하다. 단순히 그렇게 치부해 버릴 순 없다. 육아는 그저 나를 둘러싼 환경이었을 뿐이다. 서재가 '창고방'이 되어버린 건 지극히 내가 그동안 나 자신을,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내가 살아온 지난 삶이 얼마나 매번 쉬웠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은 안방문을 나서는 순간 출근인데, 퇴근은 없는 굴레에 갇혀있는 듯하다. 잠을 자는 일도 깨는 일도 내가 원한 순간이었던 적이 없다. 아이를 재우다 나를 재워버리는 일이 일쑤고 자다가 별안간 무슨 일인지 짜증을 내고 몸부림을 치는 두 아이의 발길질에 화들짝 놀라 깨는 일도 다반사다.

요즘엔 둘째가 새벽 다섯 시만 넘어가면 꿈틀거리고 신음하며 일어나려 한다. 그럼 나는, 그 소리가 새벽의 고요뿐 아니라 첫째와 남편까지 깨울까 싶어 냉큼 둘째 아이를 안아 들고 작은 방으로 '유배'를 간다. 아이와 작은방으로 이동하는 일이 나의 하루 첫 일과인데, '유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억지로 잠을 쫓아야 하는 그 순간이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피로는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실제로 지난주는 내내 장염으로 입원을 했던 둘째의 병간호를 하느라 온몸과 마음이 녹초인 상태다. 사실 오늘 밤, 두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두 눈을 감고 한참을 망설였다.


나가서 서재를 정리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고자 마음은 먹었는데, 이 무거운 몸을 일으킬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러니까 방금 전 이러쿵저러쿵, 육아가 힘드네, 마네 몇 줄 적은 것은... 내가 그럼에도 오늘 밤엔 서재를 치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냥 그뿐이다. 나 스스로 기특하다 여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되게 젠체한다고 타박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지... 서재를 치우고 나니 정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를 돌보지 않았는가, 힘들다는 핑계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얼마나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는가, 반성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그래도 나도 매번 쉽지만은 않았다고, 자위하는 마음까지 챙기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날들보다도 요즘의 나는 조금 더 힘들다. 남은 올 해를 잘 보내야 내년의 내가 조금은 더 만족스러울 것 같은데 뭐든 쉽지가 않다. 글을 써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서 책을 읽는 일로 위안하는 시간들이 더 많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해야 할 임무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것만 같은데 마음은 얼른 나를 좀 돌보라고 글도 쓰고 일도 하고, 해 내야 한다고 채근한다. 채근하면 할수록 조바심이 들고 결국 나까지 내가 어쩌질 못한다. 무기력해지고 '오늘까지만'이란 말로 또 하루를 모른 채 눈감아 버린다. 그렇게 피로만 쌓이는 줄 알았는데, 마음엔 나 스스로를 마땅찮게 여기는 감정들이 먼지처럼 쌓였다. 케케묵어버린 서재처럼.


서재를 청소하는 일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수련 같기도 하다. 정말 미루고 싶었고 계속 문을 걸어 잠근 채로 안 보고, 못 보고 살고도 싶었는데 청소를 하니 내가 정말 잊고 살았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 생일 선물로 남편에게 받았던 책더미들이 그랬고, 나의 지난 글들이 그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편지가 그랬다. 편지를 읽으며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었던가, 의연하게 결혼 생활과 육아를 해 내는 대단한 어른이었던가.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고, 굳이 기억하려 하지도 않는 예전의 나를 되새겨 보기도 했다. 적어도 이 누군가에겐 내가 그렇게 보였구나 싶었다.

뒤이어 찾은 건 불과 2년 전,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적에 셀프 사진관에서 친구와 찍은 사진이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육아가 힘들다 여겼고, 그에 임신까지 한 상태라 몸도 가볍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가 예쁘지 않았고 어떤 옷을 입어도 멋이 없었다. 한데 2년이 지나고 다시 보니 예뻤다. 고작 2년인데 젊었고, 초라하다 생각했던 모습이 아닌 그냥 내가 알던 내 모습 그대로였다. 서재의 먼지를 치우고 찾은 편지와 사진이 마음 한 구석의 먼지까지 치워준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서재를 '창고방'이 되도록 가만히 둔 채로 돌보지 않은 것은 언제든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해 낼 수 있다는, 내 일에 대한 자만 때문이었다. 이쯤 되니 육아는 정말 환경일 뿐, 내가 내 일을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이런 환경이어서 글을 쓸 수 없다거나, 쓰지 못한다면 나는 단지 그 정도일 뿐인 것 아닌가.


서재 치우는 일은 과연 수련과도 같다.






내겐 먼지 쌓인 서재가 있다.

책도 제대로 꽂혀있지 않고, 의자엔 또 다른 책들이 앉아 있고,

책상엔 아이들의 장난감이 자리하고 있는, 창고인지 서재인지 모를 그런 서재가 하나 있다.

하지만 먼지를 닦아내고 나면 반드시 말끔해지고 마는 서재가, 나한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