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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Jun 23. 2024

다행스러운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이는 매우 활동적이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더구나 근래 자주 미세먼지가 “좋음”이어서 어린이집을 하원한 뒤에 매일 놀이터에서 놀았더니 눈만 뜨면 놀이터에 가자고 한다. 아무 계획이 없는 이번 주말 같은 날이라면 정말 눈만 뜨면 놀이터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겠지만, 아뿔싸 두 아이가 모두 아프다.




지난 금요일 큰 아이가 간 밤에 고열이 올라 유치원 등원을 하지 못했다. 아데노바이러스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고, 그래도 열이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는 간격이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주말 동안엔 차차 좋아질 거라 예상했다. 더불어 작은 아이가 주말 동안 큰 아이의 감기를 고스란히 옮아 증상이 생길 거란 것도 함께 예상했다.


예상 중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빗나갔다.

안타깝게도 토요일 아침부터 작은 아이가 설사를 했고 큰 아이의 증상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아데노 바이러스의 특징이 장염까지 달고 온다 해서 작은 아이가 증상을 피해 가지 못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 소아과를 다녀온 걸 기점으로 큰 아이의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건 어쩐지 좀 수상했다. 열이 오르는 간격이 줄어 해열제 한 종류만으론 좀체 떨어지지 않았고 교차복용을 하고서도 3-4시간 만에 다시 열이 올랐다. 기침이 점점 심해졌고, 39도가 넘어가도 별로 처지지 않던 아이는 38도만 넘어가도 금방 까무룩 잠들 것처럼 굴었다.

와중에 작은 아이는 뭘 먹기만 하면 줄곧 설사를 했고 밤잠에 들기 전엔, 혈변까지 보았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토요일, 즐거이 뛰어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 두 아이의 병세를 걱정하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두 아이를 재우고 어느덧 새벽, 큰 아이가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침을 쏟아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눈이 떠지고 베개 아래에서 체온계와 핸드폰을 찾았다. 플래시를 켜고 아이의 체온을 제니 38.8도. 해열제를 먹이고 잠이 들기까지 기다렸다. 웬만하면 피곤함에 내가 먼저 잠들었을 테지만, 아이의 거친 기침 소리에 가슴이 묵직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아이의 이불만 줄곧 다독였다. 캄캄한 방 안의 묵직한 공기를 눈치챘는지 남편도 잠에서 깼다. 날이 밝은 대로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소아과를 찾아가자고 했다. 아무래도 증상이 더 심해진 게 중이염이나 폐렴으로 번진 것 같아 불안했다. 병원 가는 일을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 더 심해질까 봐 걱정이 됐다. 남편이 다시 잠든 뒤에도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앉아 일요일에 진료를 보면서, 엑스레이까지 찍을 수 있는 소아과를 찾았다. 두어 군데를 알아둔 뒤 쌀을 씻어 담가두었다. 작은 아이가 설사를 심하게 하니 아침엔 죽을 끓여 먹이고 얼른 병원에 갈 참으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움직였는데 움직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동이 트고, 잠시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서 구수한 냄새가 훅 끼쳤다. 미동도 없이 잘 자고 있는 작은 아이가 여전히 속이 안 좋은지 설사를 한 듯했다. 큰 아이의 고열과 작은 아이의 혈변을 동시에 받아들이자니 괜히 좌절감이 들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아픈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스스 깬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엉덩이를 닦이며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들을 되새겨야지 싶었다.

무엇이 다행일까. 두 아이들은 아픈데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제법 좋다. 잘 놀고, 먹고, 잠도 나쁘지 않다. 줄곧 설사를 하면서도 열 한 번 오르지 않는 작은 아이가 기특하다. 아침 기저귀는 혈변이 아닌 게 다행이고, 해열제를 먹은 큰 아이가 땀을 흘리며 좀 더 잠을 잘 자주는 것도 다행이다. 괜히 두 아이들이 입원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면 이른 새벽 시간에도 기다렸다는 듯 받아 줄 나의 엄마도 있다. 그 또한 다행이다. 두 아이가 사실 이만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기민하게 아이들의 증상을 눈치챌 수 있는 것도, 일요일에 진료를 보는 병원을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모두 다행스러운 일들 투성이다.




오늘 아침, 죽을 먹이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병원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오진과 과잉진료를 한다는 이야기를 보았고 거의 도착을 했을 무렵 다른 병원을 알게 돼 다급히 차를 돌렸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테지만 조금은 예민하고 까다롭게 구는 아내의 요구에 토 하나 달지 않고 곧장 다른 병원으로 차를 돌려준 남편도 다행이고 고맙다.


큰 아이는 다행히 폐렴은 아니지만 중이염과 기관지염이라고 한다. 작은 아이는 장염이고.

두 아이 모두 증상이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니고 집에서 통원하며 잘 지켜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만하니 다행이다.


나의 양쪽으로 잠든 두 아이를 두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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