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근 Aug 21. 2021

신자유주의적 숨바꼭질

제 목 : 심리정치

원 제 : PSYCHOPOLITIK

부 제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지은이 : 한병철

옮긴이 : 김태환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15년 3월 2일 (원서 2014년)

사 양 : 146쪽 / 125ⅹ200mm



햇빛이 조금 가시는 오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두 명씩 모인다. 올 만한 친구들이 다 모이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술래를 정한다. 술래가 눈을 감고 정해진 숫자를 세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정해진 장소 안에서 들키지 않을 만한 공간에 숨는다. 숫자를 다 세면 드디어,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숨바꼭질의 묘미는 누가 더 잘 잡고 누가 더 잘 도망가느냐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따가 역할을 바꿔서 또 하면 되니까. 이 게임의 묘미는 서로가 함께 정한 약속을 지키면서 함께 땀 흘리며 노는 것에 있다.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면 내일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즐겁게 헤어진다. 행복한 피로감과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그러나 이젠 그저 놀기 위해서는 결코 모이지 못한다. 그것은 타인에게 자신을 앞지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줄 뿐이다. 이젠 날이 저물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대신 만성적 피로에 짓눌리며 불안한 내일을 걱정해야만 한다. 한병철의 『심리정치』는 ‘생(生)’의 형식으로서의 숨바꼭질의 종언을 고한다.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는 ‘생존’의 형식으로서의 기형적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잡는 것과 도망치는 것,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숨 막히는 숨바꼭질.


신자유주의적 숨바꼭질에서 개인은 술래인 동시에 도망자가 된다. 자신과의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망가야 하는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뒤쫓아야 한다. 효율성, 최적화, 모티베이션은 참가자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다. 그는 생명력을 마모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무한히 갱신되는 자기 목표/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내달려야 한다. 결국 그는 무한 경쟁에 지쳐 만성적인 피로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긍정사회 속에서 그는 자신조차 따라잡을 수도 없다는 좌절감에, 지독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이 게임에서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지워진다.


이 게임은 (과거에는 없었던) 디지털 세계 속에서도 이뤄진다. 현실에서 실패자인 개인들은 디지털 세계 속에서 ‘익명성’의 뒤로 숨는다. 이들은 술래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면 술래가 되고 도망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면 도망자가 된다. 이들에겐 뚜렷한 지향성이 없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다수의 흐름이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다. 다수의 흐름이란 ‘좋아요’의 개수가 가장 많이 눌려진 것이다. 다수가 ‘좋아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곧바로 도망자로 낙인찍힌다. ‘좋아요’를 누른 다수의 무리는 거대한 술래가 되어 도망자를 즉시 추적하고 잡아먹는다. 개인들은 현실에서의 좌절감, 모욕감, 분노를 디지털 세계에서 마구 분출한다. 악플, 신상 털기는 이 게임의 주요 행위들 중 하나이다.


신자유주의적 숨바꼭질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은 ‘돈’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아이템 ─ 물질적 재화에서 지식, 권력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까지 결국 모든 것 ─ 을 소유할 수 있게 되고, 이 게임에서 점점 혹은 급속도로 유리해진다. 그는 자신보다 가난한 술래들에게서 더 빨리 더 멀리 도망칠 수 있고, 자신보다 가난한 도망자들을 별로 어렵지 않게 잡아챌 수 있다. 이들은 술래의 역할로도 이겼고 도망자의 역할로도 이겼기 때문에 막대한 보상을 챙길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지닌 자들이 보상받는 만큼 급속도로 불리해진다. 이들은 의미 그대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숨 막히게 살아가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숨바꼭질의 핵심은 참가자들에게 굉장한 자유도를 보장하려는 데 있다. 규제는 이 게임의 순조로운 진행을 막는 방해 요소로서, 빠른 시일 내에 제거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핵심 슬로건 중 하나는 ‘규제 완화’이다. 대신 규칙과 규정을 미리 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 참가자들끼리 알아서 정하도록 내버려 두면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질서가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은 규제와 개입 없이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균형 상태에 이를 것이다. ‘시장의 자유화’는 필수적이다. 참가자들은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무제한적 자유는 무제한적 향유를 암시한다. 신자유주의는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제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것은 ‘빅데이터’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빅데이터는 대상에 대한 아주 방대한 데이터들을 분석하여 각 개인들이 당장 원하는 것을 즉시 제공할 뿐만 아니라, 분명히 원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을 친절하게도 미리 제시해 준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이 숨바꼭질은 앞서 말했듯이 돈을 가진, 그것도 아주 많이 가진 사람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그들의 돈은 그 돈을 간절히 원하는 돈 없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종이일 뿐이다. 그들은 거짓되지만 아주 매력적인 자유를 영리하게 이용함으로써 나머지 참가자들을 통치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혁명에 안정적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그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가진 자들도 ‘자본’ 앞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숨바꼭질의 참가자일 뿐이다. 자신보다 앞서 있는 타인을 잡기 위해, 최소한 뒤처져 잡아먹히기 않기 위해 숨 막히게 내달려야 한다. 결국 이 게임의 유일한 승자는 게임에 참가하지 않은 ‘자본’뿐이다. 이 게임에서 인간은 자본에게 아주 효율적으로 착취당한다. 자본은 인간의 자유를 착취함으로써 게임 전체를 통치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인간적 가치를 배제하는 오직 자본을 위한 질서라면, 왜 우리는 이 게임에 참가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한병철은 생존/생산의 형식이 아닌 삶의 형식, 즉 우리 삶의 내재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백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임 속에 있어도 게임의 모든 룰에 얽매이지 않는 ‘깍두기’. 그런데 모두가 깍두기가 된다고 이 기형적인 숨바꼭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백치로의 움직임이 기존 질서를 전도시킬 만큼의 행동력에 이르지 못한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의 도망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심리정치』는 붙잡고 도망치는 대신 잠깐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이 자리에 멈춰 서서 이 세상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겐 『심리정치』그 너머의 이야기, 지금 멈춘 이 자리에서 다시 내딛을 첫 발걸음에 대한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붙잡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이전 06화 너무나 인간적인 놀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