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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근 Oct 01. 2021

경제학의 주도(酒道)

제 목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원 제 : ECONOMICS : THE USER’S GUIDE

부 제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지은이 : 장하준

옮긴이 : 김희정

출판사 : 부키

출간일 : 2014년 7월 18일

사 양 : 496쪽 / 152ⅹ225mm



첫 술은 부모님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술 마시는 법은 가장 믿을 만한 어른에게서, 처음에 똑바로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성년이 지나면 누구나 술을 사서 마실 수 있지만, 술을 마시는 것과 술을 마실 줄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단지 법적으로 인정받는 어른의 행동이고, 후자는 정신적으로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의 행동이다. 주도를 올바르게 익힌 사람은 어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들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술버릇은 한번 길들여지면 쉽게 바뀌지 않으며, 특히 비딱한 방향이라면 더욱 고치기 어렵다. 그렇기에 올바른 술의 길은 자격 있는 어른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어느 길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인지, 또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처음에 갔던 그 길이 맞는지 알려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경제학에 주도가 있다면, 그 첫 술은 누구에게서 배워야 좋을까? 나라면 함께 손 잡고『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 들어가 장하준 교수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술을 잘못 배운 사람들의 경제학, 즉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고 학문으로서의 진정한 경제학으로 인도해 준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세상 모든 술을 다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며 오만을 부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맞서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경제학은 겸손하면서도 정확하다. 경제학이란 세상의 여러 영역 중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량을 알고 지키는 것, 이것이 경제학의 올바른 주도를 배우는 첫 발디딤이다.


(…) 경제학이 다루는 대상은 경제여야 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혹은 거의 모든 것)’에 관해서가 아니라 돈, 직업, 기술, 국제 무역, 세금 등을 비롯해 우리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입을 분배하고, 그 결과 나온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과 관계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33쪽)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모든 것에 적용되기 때문에 경제의 ‘역사’는 이제 딱히 필요 없다고 말한다. 경제학이 드디어 완성되었으니 세상이 이것에 맞게 운용되기만 한다면 미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이는 필름 끊긴 사람의 공허하고도 무책임한 주사와 같다. 반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현대 경제학의 시발점인 1776년부터 현재까지의 경제사, 그중에서도 특히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명확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되짚어 준다. 현재 우리의 경제 구조는 과학적 계획 또는 필연에 의한 절대적 귀결이 아니다. 역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수많은 변곡점들 중 하나일 뿐임을 이 책은 일깨워 준다. 신자유주의 또한 아주 최근에 형성된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정답이라고 확신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들은 노동 환경의 악화, 소득 불평등의 심화 등을 거쳐 결국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허점을 인정하지 않은 채 우기는 지독한 술버릇을 보였다. 그러나 경제학은 ‘사람’끼리 주거니 받거니 어울리는 술자리이며, 이 책이 분명히 말하길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각자 자신의 말만 맞다고 고집부린다면 그것은 정치, 경제, 술자리, 그 어디에서도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장하준 교수는 주요한 경제학파를 9가지*로 크게 나눈 뒤 각각의 핵심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경제학적 의미와 한계를 균형 있게 제시한다. 다른 경제학 이론들의 주장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 이것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전하는 경제학 주도의 핵심이다.

* 고전주의 학파, 신고전주의 학파, 마르크스학파, 개발주의 전통, 오스트리아학파, (신)슘페터 학파, 케인스학파, 제도학파, 행동주의 학파. 물론 책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경제학파들도 많다. 


(…) 경제학 이론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에 근거하기 때문임을 이해하고 나면, 경제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다시 말해서 옳고 그름이 확실한 ‘과학’이 아닌 정치적 논쟁으로서의 경제학을 토론할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이런 문제에 관한 의식을 확실히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전문 경제학자들이 과학적 진리의 수호자를 자청하면서 지적인 으름장을 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166~167쪽)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경제로 이루어지고 경제의 모든 것은 ‘시장’으로 귀결된다. 시장이란 교환/소비의 장으로 환원된다. 교환 대상이 무엇이든지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교환/소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 아니다. 이것만 맞고 다른 건 다 틀리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경제는 시장의 영역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현상들이 섞여 있는 대단히 복잡한 영역이다. 장하준 교수는 생산, 노동, 금융에서부터 시장 영역 너머의 공공 영역, 불평등과 빈곤, 국제적 이민까지 경제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데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할애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젠체하지 않고 독자들이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평이한 언어를 사용한다. 저자 스스로 머리말에 밝혔듯이 그는 독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곧 독자의 주량을 존중할 줄 아는 학자다.


생애 처음으로 마셔 보는 첫 술은 쓰고 독하다. 이미 맡은 알코올 냄새와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잔여감으로 꽤 거북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님과도 한잔하고 친구들과도 한잔하며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면 거부감이 줄어들고 그만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맛도 없이 쓰기만 하고, 마실수록 머리만 어지러워지는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 싶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차근히 익혀 나가다 보면, 경제학 지식으로 자신의 삶을 좀 더 즐겁게 바꿀 수 있고 더불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데 한몫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책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경제학의 주도를 익혀 보길 권한다.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 바란다.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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