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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근 Sep 10. 2021

정신의 눈

제 목 : 시선

부 제 : 정운영 선집

지은이 : 정운영

출판사 : 생각의힘

출간일 : 2015년 9월 14일

사 양 : 336쪽 / 145ⅹ225mm



시력은 정량적이다. 마이너스에서 2.0까지 단계에 따라 표준 수치가 정해져 있다. 모든 이에게 적용 가능하며, 측정하는 것 또한 아주 어렵지 않다. 집 가까운 안과에 가서 의사가 짚어 주는 기호를 읽으면 간단하게, 검안 기기를 이용하면 보다 정밀하게 알아낼 수 있다. 시력이 이전보다 떨어졌다 해도 세상이 조금 흐리게 보일 뿐 아주 잘못될 일은 없다. 떨어진 시력은 그에 맞는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시은 정성적이다. 한 사람이 지닌 시은 안과에 가서 측정할 수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말과 글, 혹은 눈빛과 태도에서 드러난다. 시력은 나빠도 괜찮지만, 시은 잘못되면 괜찮지 못하다. 잘못된 시은 정말로 세상을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시을 교정하려면 안경을 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벗어야 한다. 우리는 ‘색안경’을 낀지도 모른 채 살고 있지 않은가. 벗기 전과 후의 차이를 깨닫는 것은 고되면서도 핵심적인 일인데, 가장 단순하지만 탁월한 방법은 색안경을 벗은 자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고 정운영 선생(1944~2005)이 바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두 개의 인용문으로 대신하고 싶다. 하나는 그가 십일 년 동안 논설위원으로 있었던 한겨레신문이 실은 부고의 일부이다. “큰 키와 깊은 눈, 묵직한 음성이 인상적이었던 고인은 화려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로 언론계와 학계에 두루 족적을 남겼다.” 또 하나는 조정래 소설가의 추도사 일부이다.


정 형은 사람의 사람다운 세상을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길을 택했고, 한 번 택한 그 길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이 세상의 빛이고자 했습니다. (31쪽)


『시선 : 정운영 선집』은 정운영 선생이 이십 년 가까이 써 온 칼럼들을 추려 묶은 책이다. 칼럼은 적은 분량에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글틀이기 때문에 글쓴이의 세상 보는 시선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의 여러 논문과 서평 혹은 그의 생애에 대한 해설 없이 칼럼만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그래서인지 선생의 시선이 더욱 응축되어 있다. 그는 경제학자, 그것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다. 그는 마르크스 이론의 이윤율 저하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때문에 선생을 대하는 시선이 은근히 꼬여 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 색안경을 벗어 달라. 그의 글을 읽으면 충분히 알 수 있다 ─ 그의 글은 붉은색도 빨갱이 같은 것도 아닌, 정열적인 것임을.


한 사람의 시력은 늙어갈수록 자연히 쇠약해진다. 죽음에 이르러 눈을 감으면 시력은 결국 소멸된다. 그러나 시선은 다르다. 이것은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을 올곧게 직시했던 한 사람의 시선은, 그의 죽음 뒤에 오히려 더 곧게 뻗는다. 『시선 : 정운영 선집』은 선생의 사후 십 주년, 그러니까 선생이 눈을 감은 지 년이 지난 뒤에 출판된 책이다. 고 신영복 교수가 쓴 추천사의 문구처럼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의 시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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