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찾았다. 7시 10분 영화여서 시간에 안 늦으려고 서둘렀으나 차가 막혔다. 마음은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초조했지만 도착시간은 7시 경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갔다. 주차장 자리도 넉넉해서 편하게 주차를 하고 올라갔다.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고, 그래서 눈물 흘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나는 자꾸만 영화 속의 상황에 날 대입해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과거로 회귀했고,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후회의 감정이 가득했다. 좋은 영화나 그림 같은 걸 보고 난 날에는 글을 쓰고 싶어 져서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다.
주차장 자리 번호를 외운 거 같았는데 결국 생각이 안 나서 한 바퀴를 돌고 차문을 열려는 순간 어디선가 '저기요!'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막 자리에 앉으려던 자세를 고쳐 문밖으로 나오자 앞 차의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막 문을 열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 총총 뛰어왔다.
'제가 아까 차를 긁었어요. 확인해 보니 제 차는 이상이 없는데 (그쪽 차를 보니) 어디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가 하고 앞 범퍼를 자세히 보니 긁힌 자국이 있었다. 차를 아껴 타는 스타일이라서 먼지가 붙은 날엔 손세차를 하고 흠집이 생긴 걸 참지 못해 바로 카센터로 달려가는 나였다. 그러나 지난 접촉사고의 경험으로 사고가 났다고 해서 흥분할 일도 아니고, 상대방의 흥분한 모습에 같이 흥분할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고가 나는 걸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이니 말이다. 그 여자는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법인차라 혹시 20만 원 정도로 현금으로 드리는 건 어떠세요?'라고 그녀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표정으로 내게 애원했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고 운전하며 영화의 여운을 길게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화를 낼 일도 아니고 내 차가 가해당했다는 속상함도 아닌, 어떠한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사랑은 감미롭고 애절하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지만, 현실은 이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귀찮은 일상들- 차 사고가 나고 아이가 아프고 시험에 떨어지고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것의 반복인 것이다.
난 건조하게 '보험 처리하시죠'라고 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차를 긁고 아이들을 데려다준 다음 다시 돌아와서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하면서 포스트잇에 쓴 연락처를 내게 건네며 선처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 이십만 원을 받고 그냥 카센터 가서 레커를 칠했다면 훈훈한 결말이었겠으나 난 번거로운 게 싫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평일 저녁을 차를 긁었다는 자책에 '또 보험료가 오르겠군' 하는 현실의 괴로움으로 밤을 지새울 것이며, 나는 나대로 '쉬고 싶다.. 쉬고 싶어' 하며 힘겹게 주차비를 정산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