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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Jul 08. 2024

고독한 회사원의 하루

아침에 눈떠서 한동안 이마를 짚고 일어나지 않았다. 지독한 월요일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가뜩이나 우울한 월요일을 더욱 그렇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닦이지 않은 샴푸가 머리카락에 느껴졌다.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까지 10분이 남아있었지만 다시 샤워기로 머리에 물을 뿌렸다. 씻어낸 다음 수건으로 물기를 제대로 제거하지도 못한 채 옷을 입었다.


폴로 플란넬 셔츠는 마르지 못한 머리카락에 젖어 로고 부분부터 원형으로 젖은 부분이 퍼졌다. 찝찝하고 축축한 출근길이었다. 가는 길에 앞차는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는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 뒤로 몇 대의 차가 서있었다. 물 웅덩이를 지나갈 때 물갈퀴가 바퀴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주차하고 내려서 우산을 받치는데 어쩔 수 없이 잠시나마 빗방울을 맞아야 했다.


패스워드를 틀리지 않았는데 사내메일은 5회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나왔고 담당자에게 요청하니 (그 시간 동안)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긴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보스는 신입을 붙잡고 한참 동안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기존 직원에겐 신경도 안으면서 뉴페가 나타나면 신상을 캐묻는 게 그의 유일한 취미다. 장단점을 말하라는 그의 말에 직원은 머뭇머뭇 대답했고 그마저도 듣기가 거북해 라운지로 나와 있었다. 한참을 질문한 다음 그가 돌아와서 하는 일은 손톱깎기였다. 이럴 때마다 라이선스를 갖지 못해 타인을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지리멸렬하다. 듣기 싫은 소리, 간섭 같은 거 독립적으로 일하면 덜 할 텐데. 그럴 때마다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들만큼 노력한 것도 아니면서 늘 나보다 위급인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와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역겹다.


일하기 싫어 앨런와츠, 마르셀 푸르스트, 필립 와일리, 딜런 토머스를 읽어도 그들의 글은 활자로만 존재하지 스토리로 와닿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만난다는 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서 닥치는 대로 읽어내고, 그런 상투성을 지닌 것을 사람들은 긴 세월 읽어왔고, 내가 가진 이야기도 표본을 벗어날 수 없을 거란 건 가슴에 응어리가 지게 만든다.


점심시간이 되자 누구보다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와서는 혼자만의 곳으로 도피하는 게 결국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백종원의 식당에 가서 어느 지점에 가도 똑같은 맛일 고기덮밥을 우적우적 비를 바라보면서 먹었다. 저가커피를 사러 갔더니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경찰에게 심문당하고 있었다. 경찰은 '남의 카드 쓰면 안 돼요'라고 했고 남자는 '예..'라고 말하고 있었다. 경찰은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하더니 '머리를 다쳤다는데' 동료에게 말했다. 메가커피 직원은 내게 천오백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건네주면서 친절하게 눈웃음을 건넸다.


집에 돌아와선 결혼식 연주를 했다. 내가 하지 못한 결혼이지만, 항상 공간에 위치한 피아노를 볼 때마다 그걸 건드려보지 않고선 못 견디는 성미를 지녔다. 피아노가 있는데 MR을 트는 건 악기에 대한 모욕이나 마찬가지다. 남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나 스스로가 치면서 소름을 느끼는 게 더 좋다. 한동안 그렇게 연주하고 나면 어느새 한 시간은 끝나있었고, '외출 쓰고 더 칠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럴 때면 하루종일 피아노만 연습하는 사람이 부럽고 내가 갖지 못한 그것에 대해 갈망하게 된다. 내 삶은 항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시기, 회한이었다.


회사로 돌아오자 서류로 뒤덮인 책상이 마주하고 있었고, 꾸역꾸역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전화가 와선 교수가 FGI 인터뷰할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전화를 끊자 또다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 정도면 떠남에 대한 욕구는 고질병이다. 신입을 붙잡고 신상을 털던 보스는 내게 다가와 통계를 물었고, 주말에까지 상위에 시달린 이야기를 꺼내며 데이터를 보여주었지만 '이거 다르잖아'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로데이터 업체 보내줬어?'

'예 근데 작년껀 통계청 SBR 법인별 데이터가 없어서요'

'그거 달라고 해야지'

'업체가 구간값으로 가져올 수 있는걸 편법으로 가져온 건데요?'

'그래도 달라고 해야지. 데이터 보내봐 나한테'


그는 데이터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다른 회의에 들어갔다. 나는 데이터를 다시 봤지만 틀린 건 없었다. 보스와 이야기할 때면 일에 대한 예민함이 데시벨이 커지는 걸로 나타나고, 그러면 보스는 그걸 자신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가령 정기품질진단이 5년인걸 대통령령에 의하면 3년이라고 우기는 식이다. 물론 법상에 3년이라고 되어있지만 각 통계별 주기는 다르고, 나의 경우는 5년인데 지기 싫어서 우기는 거다. 나이가 들어도 애 같은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상대해야 한다는 게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다. 나도 그렇겠지. 이럴 때면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차라리 요가를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피나콜라다나 마셨으면 좋겠다.




그는 돌아와서 '데이터 확인해 보니 맞더라고. 왜 나한테 더 세게 말을 못 해'라며 결국 나를 나무라는 가스라이팅을 했다. 아 이 정도면 다 놓고 싶어서 대놓고 딴짓을 했다. 주말에 전화해서 보좌관이 시킨다고 데이터를 받지 못한 이유를 A4 반페이지를 쓰라고 하는 새끼나, 상위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데 까라는 대로 안 깐다고 부하직원에게 윽박지르는 새끼나 회사에 다 불 질러버리고 싶다.


퇴근 후 코노에 가서 소찬휘 노래를 불렀지만 화가 가시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지속해야 하는 걸까.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지만 결국 타인에겐 이런 것들이 하소연으로밖에 들리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결국 사회생활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으며 삼십 년이나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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