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이스는 필요하지만 개인별 고유한 특성을 마주하긴 싫어
주말에 누구를 만나지 않는 이유는 타인을 견디는 것보다 나를 견디는 게 낫기 때문이다. 모임을 나갔을 때 곤혹스러웠던 건 타인의 개성이나 특징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자의식 과잉이거나 본인 말만 하고 타인의 말은 듣지 않았다. 본인 분량을 다른 사람의 2배인 30분을 끊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완전히 질려버렸다. '분량을 줄여주세요'라고 말하면 될 테지만 모임장도 그렇고 아무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체면 차리는 걸 수도 있고 굳이 싫은 소리 하기 싫은 걸 테다. 타인에게 뭘 기대해서 '수정을 요하는'말을 할 텐가. 그건 사람 성향이기도 해서 1. 굳이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과 2.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 중에서도 누가 '본인이 지적하고 싶은걸' 타인이 대신 지적해 주면 시원해한다.
나이가 들수록 본인만의 생각이 강해지며 잘 바뀌지 않는 성질이 되는데 대체로 나이가 나보다 많은 그들은 그러한 성향이 더욱 도드라졌다. 그중 그런 자기의 성향을 최대한 감추며 겸손하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겸양은 익숙하긴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본성은 감추고 타인을 대하는 방법론적인 걸로 상대방을 대하기 때문에 피상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면 모임을 계속 나갔을 것이다. 누군가를 더 알아가고 싶지 않다.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눈앞에 딱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같다.
그래서 주말엔 혼자 있게 된다. 정신없는 단체카톡에 묶여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씩 찾아오는 공허감은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냥 하늘을 본다. 그런 감정을 없애려고 피아노를 치지만, 연주 뒤엔 또 적막이다. 풍요 속의 빈곤인가, 이런 일상이 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내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면 또다시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될 것을 안다. 온전히 내 시간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겠지.
예전에 '타인의 시간을 보장해 주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라고 했던 그 트레이더는 잘살고 있으려나. 이글루스로 만나서 그의 집에 갔더니 그의 친구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 역시 트레이더였고.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니 하고 있는 공부도 몰입이 안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지는 하루다. 잘난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보다 나를 발전시켜야 하는 건 알겠는데 자꾸만 생각이 가로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