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 Aug 29. 2024

연이은 진급 누락

죽고 싶어서 달렸다

인사발표가 났고 승진은 안 됐다. 열심히는 안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성과는 항상 보여주기식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간다. 나는 룩라이크-뭐뭐처럼 보이는 행동을 안 한다. 가령 바쁘지 않은데도 바쁜 척하는 것이라든지 회사에 애써 충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건 은근히 상사에게 사는 술이라든지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하는 것들로 나타나지만, 자존심이 강한 나는 그런 건 편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편법을 쓰는 애들이 잘되는 것 같다. 가령 대학시절에 커닝을 해서 좋은 학점을 받는 애들이라든지, 일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아도 동료와의 좋은 관계를 통해서 무마하는 것 등이라든지.


그런 걸 보면 화가 났다. 대학 때도 교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애가 좋은 학점을 받을 때, 나는 교수와 좋은 관계를 (굳이) 유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학점을 받지 못했다. 타인에게 좋게 보여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단 건 알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사회생활에서도 동일했고 고등학교 때까지의 모범생-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사지선다형의 문제를 맞히거나, 수능에서 명확한 답을 고르는 문제는 잘할 수 있었지만 타인의 눈에 들기 위한 방법적인 것들은 몰랐다. 나는 상사와의 의견대립에서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주장을 밀어붙이는 타입이었고, 그런 모습을 그들은 싫어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도리어 찍어 누르려고 했다.


통계 업무에서 가중치를 구하는 수식이 달라 공표를 정정하는 일이 있었다. 검증식을 보니 분야별로 가중치를 곱해야 하는 걸 대표분야로 가중치를 곱해 수치가 다르게 나온 일이었다. 숫자에 강한 나는 해당식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상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된 점을 지적했을 때, 상사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 이후로는 내게 적대적인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은근히 빈정거리는 태도, 회의 중 갑자기 나타나는 감정적인 태도로 나타났다. 이런데 어쩌면 승진을 욕심내는 것도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은 학교가 아니었다. 정해진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타인과 잘 융화하고 모나지 않은 태도를 가진 사람을 다들 선호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가 너무 싫었다.


이직을 시도했다. 번번이 그 시도는 최종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한 건 이직이 아니었다. 단지 경직적 조직구조, 필부필녀와 부대껴야 하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 조직을 옮긴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또 안 오리라곤 확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 맞지 않는 회사생활을 일 년만 버티자, 해서 버텨온 게 만 십 년이 되었다. 숱한 승진 누락과 후배가 먼저 직급을 다는 경험은 무뎌질 만도 했지만 승진시기마다 송곳처럼 날 파고들었다. 염원했던 취직이었지만, 그 취직이 이런 족쇄가 될 거라곤 취업 당시에는 모를 일이었다.




승진이 된 사람은 나보다 늦게 입사해 기획부서에서 일하며 박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는 연공서열이 아닌 경력직으로 들어온 사람을 먼저 진급시키기 마련이었고, 그들은 회사에서 공을 세웠다고 말할 테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회사에선 누가 더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보이는 '어떤' 퍼포먼스를 했는가, 그건 쇼맨십에 가까운 것이었다. 각자의 업무의 비중이나 중요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걸 파악하고자 낸 용역에서는 하나의 과업을 나레비 세워 중언부언했지만, 결국 그 용역에서조차 어떤 일이 더 중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하지 못했다. 그만큼 과업의 특수성과 각자의 상황이 다른데 기획부서에 있다고 더 중요한 일을 하는지 자문하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회사에 염증을 느낀 지 10년이 되었다. 더 이상 나아질 것도 없고, 여기에서 나의 성장이 얼마나 될지도 안개처럼 흐릿한 상황에서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까' 버틴 게 점점 턱을 친다. 내가 진정으로 승진을 원하는가? 나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 앞에서는 무작정 나가서 심박수가 터질 것처럼 달렸다. 점점 숨이 가빠 오면 그대로 죽고 싶었다. 더 이상 스피드를 내지 못해 걷는지 뛰는지 구분하지 못할 걸음을 걷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양 가뿐히 스쳐 지나갔다. 달리기를 하면 그런 사람을 많이 본다. 꾸준히 뛰는 것도 아니면서 타인을 앞서나가고 싶은 마음뿐인 사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절뚝이며 걷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비우려고 한 달리기지만 스러질 것만 같은 순간에도 당장 내일 할 출근과 미래 같은 게 혼재되어 뇌리는 정리되지 않았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안 나와서 그럴수록 더 나를 혹사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끼리 음악분수를 바라보고 쉬고 있었지만 나는 나 자신에만 골몰해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 하던 '이러다 정말 고독사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죽는 건 두렵지 않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혼자니까. 하지만 인생에서 뭘 성취하고 세상을 벼릴 그 '무언가'가 없다면 어떡하지?라는 게 계속해서 날 괴롭혔고 그게 없으면 죽는 게 나은데 이런 생각만이 자꾸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연차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