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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Sep 20. 2024

아버지가 없었으면

중학생일 때 하루는 미라가 집에 초대했다. 미라는 철없이 밝은 애였는데 집에서 노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없단 말을 했다. 여느 날과 같은 보통날이었다. 그런 비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날이었고 어린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도 괜찮다는 말도 섣불리 하지 못할 만큼 상황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도 한결같이 나를 대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왠지 그녀가 어려웠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학년이 바뀌었다.


하지만 가끔은 미라가 부러웠다. 남동생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아버지가 나의 목을 조르던 날, 나는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만 없으면 돈이 없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천성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난 나는 한 번씩 아버지가 집안을 뒤집어 놓을 때마다 차라리 부모가 없는 집이 부러웠다. 그는 명백한 남존여비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태어나 형제들 뒷바라지까지 했다. 가족한테도 경제적 지원을 다 해주고 그가 욕먹는 이유는 말을 나쁘게 해서다. 그는 막말로 표방되는 것들을 가족한테 쏟기 일쑤였고 그런 건 친척도 다 돌아서게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항상 그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힘든 상황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었고 그에게선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언제 슬픈지 언제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는지 어떨 때 기쁜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감정의 표출을 화로 했다. 그에게 감정을 가족한테 말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그러던 아버지가 아프다고 한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동생한테 전해 들었을 때 왜 아파서 사람을 걱정시키는지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악했으면 아프지나 말지 왜 내가 그를 용서하지도 못했는데 언제까지 건강할 줄 알던 사람이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를 죽을 때까지 미워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겠다고 한날 그가 내게 미안하다 했을 때도 차창을 닫고 대답하지 않은 채 차를 출발시켰던 나였다. 근데 막상 그가 약해지자 죄책감 같은 감정이 든다. 나는 그를 치면서 왜 맘대로 아프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막상 입원실에 누워있는 그를 보면 소리를 지르는 내가 아닌 눈물을 흘릴 내가 될 것은 명백하다. 사랑이 애증이라면 나는 차라리 사랑을 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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