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연애를 하면 난 쉽게 지루해지곤 했다. 남자를 보는 기준은 성격은 배제한 채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얼굴을 봤다. 그의 외양이 흡족했기 때문에 그를 유혹했다. 플러팅은 내 취미 중 하나였다. 단순하게도 4대 4 남녀가 섞여있는 자리에서 모든 남자들이 날 선택하는 게 좋았고 그중 한 사람을 고르는 건 사냥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만난 그는 지고지순했다. 재즈를 좋아한다고 하자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을 예매해 주었고 꽃을 좋아한다고 하자 장미꽃다발을 내밀었다. 그가 자취방에 날 데려간 순간 그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한참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날 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스마트했고 섬세했으나 매력이 없었다. 나는 그 추상화된 것을 찾아 헤매다가 종내에는 그가 지겨워졌다. 내가 뭘 하든 그는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서 헤어짐을 고했고 그는 이유를 모른 채 콜백을 했지만 그 전화를 받을 만큼 참을성도 없었다.
그런 습관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 없고 반복되기만 했다. 그럴만한 사람을 사귀고 나면 급격히 식었는데 그건 소유욕 때문이었다. 사귀기 전 단계까지의 도파민만 즐기다가 무료한 오후를 둘이 맞이하는 순간이면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현실자각에 끝을 고했다. 항상 상대방은 이유를 모른 채 이별을 맞이해야 했으며 개중에는 그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긍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게 사람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마음을 순간이나마 내게 향하게 할 수 있다면 난 그 목표만을 위해 돌진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깊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는 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난 지극히도 자극을 좇는 인간이었지만 그땐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와의 관계를 타진하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무엇이었다.
문제는 성공하지 않을 때였다. 내가 어떤 것을 해도 넘어오지 않은 사람에겐 난 처절히 매달렸다. 그가 아무리 날 내팽개쳐도 마지막에라도 그가 받아준다면 난 이긴 것이었다. 마침내 그의 마음을 내게 돌렸을 때 난 깊은 공허함에 빠졌다. 그와의 관계도 종결되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종내에는 나를 온전히 만족시킬 사람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것은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지금이야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을 만나도 동일하게 권태감을 느낄 것이란 걸 알지만 그때는 아무리 물을 들이켜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났을 때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특정 사람을 만나면 그의 고유성 때문에 만나는 도중에도 뛰쳐나오고 싶었고 그런 자아의 충돌이 더없이 피곤하게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란 기대감도 많이 내려놨으며 혹여 흡족한 성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잠깐의 흥미는 느끼겠지만 더 이상 다가가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얘는 얼마나 가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