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가게 된 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스키 바였다. 바 형태를 지나가자 오픈룸으로 자리가 안내되었다. 긴 생머리의 몸이 드러나는 민소매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현, 먹던 거 먹을 거지?’ 글렌피딕을 가져오더니 빠르게 세팅을 시작했다. ‘원이 앉힐게 괜찮지?’라며 20대 초반의 앳된 여자가 상석에 앉았다. 나는 아까부터 불편감을 참을 수 없었다. 현은 그 어린 여자에게 ‘영어 되게 잘해 얘. 회사로 스카우트하려고.’ ‘연봉은 얼마 주게?’ 그가 데려온 파란색니트에 구찌 목도리를 한 90년생 동업자가 물었다. ‘1억은 줘야지’라며 과히 허세가 낀 웃음을 허허 웃었고 어린 여자애도 따라 웃을 뿐이었다.
‘학비가 필요해서 일하는 거래’라며 그들은 그녀를 마치 고학생으로 포장했지만 그런 건 다 거짓말이란 것도 알았다. 그저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택한 일, 하는 일이라곤 남자 고객의 비위를 맞추며 반박이라곤 못하는 일, 그들의 잔이 비는지 끊임없이 체크해 불편이 없게 하는 일이 자본주의 명목하에 용인되는 일이라면 물질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만능주의에 사는 내가 역겨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기도 해서, 서초에 오기 전 찾아본 친구의 전세는 2억 5천이었다. 거기에 사려면 전재산을 정리해야 하는 내 현실과, 밑바닥부터 시작해 나보다 좋지 않은 학벌의 남자가 승리자인 양 뻐기는 것도 아니꼬웠다. 친구가 그런 그가 마음에 들어 여성으로서 매달리고 있는 상황도 꼴 보기 싫었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를 그딴 식으로-썸이라면서 바텐더와 농담따먹기 하는-그에 대한 반발감은 점점 커졌다. 친구는 글렌피딕을 먹으며 점점 취해갔고 그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짜증이 났는지 내게 화살을 던졌다.
‘너도 남자 좀 만나’라며 말하는 그녀에게 ‘난 아무나 만나기 싫어’라고 하자 자리가 싸해졌다. 난 아까부터 삼성전자가 왜 망했는지 아세요? 라며 썰전을 벌이며 별 같잖은 게 친구를 무시하는 발언도 싫었고 친구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애의 주변인이 보험팔이 1등 해서 람보르기니 끌고 다니는 애라는 게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무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남자들은 ‘아무나?’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친구는 취해서인지 본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자는 얼굴이 제일이지, 능력은 안 중요해’라고 말했고 나는 보란 듯이 ‘아니, 능력이 더 중요해’라고 말했다. 외모지상주의와 자본주의숭배자 사이에서 난 마음속으로 씨발씨발하며 ‘이제 집에 가자’라고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는 순순히 따라 나왔다.
그 두 남자애는 정중히 악수를 청하며 ‘오늘 얘기 흥미로웠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더 얘기해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남자의 표정에서 여자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너 걔가 너 진심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대할 거 같아?’라고 하니 ‘아니, 근데 너 오기 전에 걔가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 누나 너무 섹시해요래.’ ‘걘 니 몸으로밖에 안 보는 거야’라고 하자 ‘네가 차단하라면 차단할게’라며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나는 분명히 친구를 사랑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은 누구보다 치열했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농락당할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남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장 지우고 자’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고 다음날 그녀는 ‘보수적인 내 사촌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 보고 차단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라고 긴 장문의 카톡을 그에게 보낸 걸 보여줬다.
나조차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한 배신이 나를 이렇게 날카롭게 만들었다는 걸, 개쓰레기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서 그가 그녀에게 하는 행동이 사랑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단 건 그녀는 모를 것이다. 돈은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걸 숭배하게 되면 인간성이 뒤로 밀리며 사람은 치졸해진다. 나는 그때부터 돈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에 미치게 되면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존엄성은 팔릴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