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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면 권태하게 하고, 이루지 못하면 갈망하게 하여

by 강아

그녀는 가족과의 식사시간에 한마디도 안 하는 자리를 견디고 있다. 아이는 이제 거의 다 컸고 남편은 그녀를 사랑한다. 어느 날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축제에 간 날 그녀는 집에 혼자 남는다. 사랑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들이닥친다. 처음엔 가벼운 스몰토크였던 것이 식사 초대로 이어지고, 산책 후에 술로 이어진다. 그러나 서로는 망설인다. 돌이킬 수 없을까 봐 당신이 원하면 여기서 그만두겠다고 하지만 그런 금지는 사랑을 더욱 불타오르게 할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클린트이스트우드는 그녀의 사진을 찍고, 그녀는 오랜만에 자신을 위한 옷을 사며 누군가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옷을 산 게 언제였나 싶다. 그 옷을 입은 날 클린트는 눈이 부시다고 말한다.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둘은 단지 나흘만을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급속도로 전개된다.


클린트는 이웃여자가 불륜을 한 후 마을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 줄 알아서 그녀를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주경계선의 펍으로 데려간다. 그들은 이미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젠 그는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들도 이제 곧 돌아온다. 이제 어떻게 하냐며 절망하는 그녀에게 그는 같이 떠나자고 한다. 가방까지 싼 그녀는 가자는 그의 말에 내가 떠나고 나면 남겨진 가족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시선이 두렵다고 말한다.


클린트는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이런 사랑은 일생에 한번 오는 거라며 남편과 함께 있는 그녀의 차 앞에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한참을 가지 못하고 서있다. 그녀는 차 문을 열려다가 열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남아 남편의 임종을 지키고 아들딸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었지만 흘려보낸 연인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진실해지고 싶어 진다며 쓰인 일기장에는 자식들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고, 클린트는 그걸 사진과 함께 책으로 만든 후 죽은 뒤 변호사가 유품을 가져온다. 클린트의 모든 재산은 그녀에게 맡긴다는 말과 함께.


시간은 유한하다. 그리고 사람은 살면서 선택을 한다. 누구와 결혼을 할지, 아이를 낳을지 선택을 한 후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을 사회는 관습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결혼했으니 한 사람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재앙이다. 사랑은 고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고처럼 갑자기 들이닥치고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빠진다. 누군가는 스테이를 택하고 누군가는 떠난다. 메릴은 남편에게 지난 십여 년간 쌓인 결혼생활로 끊어낼 수 없는 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클린트와의 대화, 그녀의 잊고 있던 꿈을 되새겨준 것 등 모든 것이 그녀를 폭풍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내겐 어떤 시간을 함께 공유해 왔다는 것이 사랑을 의미하진 않았다. '상대는 나를 깨부수고 내가 잊고 있던 것을 상기하게 해 주며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클린트와 떠났다면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클리셰 말고, 그녀가 그녀만을 생각해서 훌쩍 떠나버리고 난 후에 남편과 아이들이 그녀를 저주하더라도 그 뒤에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강렬한 사랑의 기억이 죽을 때까지 못 잊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건 이뤄지지 않았기에 더욱 간절하기도 한 것이리라. 신은 이루면 곧 권태롭게 하고, 이루지 못하면 그걸 갈망하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삶을 살아가게 한다. 잔인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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