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을 쉴 수 있다고 좋았던 건 다시 출근일자가 돌아오니 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조삼모사도 아니고 금요일 퇴근 때 해방감을 느끼다가 일요일에 구속을 느끼는 건 계속되기만 한다.
금요일 일정은 완벽했다. 영화표가 비싸기 때문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구매하는데 그럼 만원 가량에 구매할 수 있다. 그렇게 한 거래처를 뚫어서 열 번 봤을 때 한 번은 서비스를 해달라고 던졌더니 그는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영화를 예매를 했고, 아트영화관은 세종에 없기 때문에 보통 대전까지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영화는 세종에서 상영을 하고 있었고 그럼 왕복 한 시간가량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간대는 자정이 넘어 끝나는 것 밖에 없었고, 영화는 러닝타임 3시간이 넘어 인터미션까지 있었다. 그래도 다음날 늦잠을 잘 수 있으니 즐겁게 영화관을 갔는데, 보통 자정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점점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터미션에 누가 말을 건 것이다.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 자리도 일부러 떨어진 자리를 고르는데 그가 말을 걸길래 예전에 심야영화를 보고 어떤 남자가 마음에 든다며 따라왔던 트라우마가 생각났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고 난 후로 그런 경험은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의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내 자리가 맞냐고 물었고 나는 맞다고 답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안심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그가 다시 왔다. '근데 제가 앞열부터 세봤거든요. 여기가 g7열 맞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예'하고 뒷자리로 옮겼다. 잘 보니 알파벳을 표기한 자리가 시트와 붙어있어 단차가 있는걸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만도 했다.
보통 기차 같은 곳에서는 나조차도 정확한 자리가 아니면 승무원을 불러서라도 정정하고 마는데, 영화관에서까지 이렇게 한다고? 가 조금 불편했다. 말마따나 자리는 듬성듬성 있었고 눈치껏 다른 자리 앉아도 될법한데 딱 보니까 공무원 같았다. 굳이 자리를 정정한 게 이해는 가는데 좀 피곤했다.
그나저나 영화는 작금의 사회 현상과도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거리가 있어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가 바로 잠들었다. 그때만 해도 앞으로 토일월을 더 쉴 수 있으니 마냥 좋았다.
하지만 막상 토요일이 되자 날씨는 구렸고 처음 나가는 모임 일정이 있었다. 사람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가기 전까지 영화를 보며 망설이다가 길을 나섰다. 막상 나갔더니 환영해 주어서 잘 다녀왔다만, 여전히 저녁은 혼자 해결해야 했다. 집에서 요리할 수도 있었지만 간편하게 편의점 도시락을 사며 카드사가 보내준 쿠폰도 쓸 요량으로 갔더니 유효기간이 하루뿐인 쿠폰이라 기한이 지나있었다. 쨌든 집에 와서 도시락을 잘 먹고 나니 이틀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틀이 남았으니까. 일요일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쉬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 이날도 영화를 봤지만 그나마 몰입이 잘 안 되는 것도 짜증이 났다. 피아노를 쳤다가도 하다못해 아파트 주민 앞에서 미스터치를 들리게 하는 게 용납이 안 돼서 안 틀릴 수 있는 것만 연주하다가 그만뒀다. 기분이 안 좋은 건 점차 휴일이 끝나가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했다.
여전히 하루는 남아있었다. 평소 같으면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하루 쉬는 게 좋아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이미 쓸데없는 영상으로 너무 많이 뇌리를 채웠지만 뭔가에 만족하지 못한 건 계속 스크롤을 내리게 했다. 식사준비를 하는 것도 지겨워(주부는 어떻게 매번 식사를 준비하는 걸까) 배달로 끝내버리고, 소파에 풍선인형이 되어 아무렇게 누워있다가 선잠을 들었다 깨고 활자를 읽었지만 이미 다음날이 출근이었다. 나는 점점 고통에 빠지고 있었다.
보게 된 영상은 이혼한 사람이었는데 그녀가 우울증에서 벗어난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날 채워주길 원하면서도 그런 이야기 보면 다시금 결혼은 너무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지닌 애정이 식었을 때 정으로 그 관계를 이어나갈 자신은 없다. 누군가에게 가는 사랑의 방향을 계약관계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너무 슬픈 일인 것 같고. 그 사람은 자신을 잘 알지 못해서 사회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마치 내가 그랬다면 나 또한 이혼하지 못해 괴로운 삶을 살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중요한 난데, 타인 때문에 깎여나가는 걸 나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타인과 융화하지 못하고 갈등인데(물론 직장은 내가 아끼는 관계들이 아니지만), 누군가 아끼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더라도 내 잠을 아이 때문에 포기하고 내가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을 배우자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쓰는 내가 행복할 수 있었을까? 관계로부터 내가 얻는 이점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독립성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그로 인해 내가 포기하는 것 때문에 더 큰 피로를 느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오면 지금 상황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맞지 않는 일을 하는 회사가 여전히 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 정해진 날에 들어오는 월급의 소중함을 알라며 내가 말하는 건 사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월급날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스트레스가 어떤 건지 알아서 그건 물론 고마운 일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회사에서 느끼는 불만족함, 내가 마땅히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빠진 채로 영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내 마음'이 그게 아니라고 자꾸 말한다. 분명히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인데 어떤 선택지가 없어 계속 버티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