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계획서를 써야 한다고 컴퓨터를 켰지만 결국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씻었다. 그리고 밥을 먹어야 하니 어제 산 올리브치아바타에 바질페스토와 계란프라이를 해서 먹었다. 그러곤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파일을 열기조차 싫었다. 막상 하면 할 텐데 켜기까지가 제일 어렵다. 여전히 파일을 열지 않은 채 웹서핑을 시작했다. 가십을 보다가 유튜브로 넘어갔다. 유튜브에는 선택하기 전엔 재미있어 보이지만 영상을 다 보면 허무함만이 남는 영상이 가득이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계속 클릭이었다. 그러다 봐야 하는 영화가 생각났고 미스슬로운이란 영화였다.
영화는 중단 없이 계속 보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 배가 고파 천혜향과 군것질을 계속했고 영화를 보니 여주인공이 너무 멋져서 로비스트 하고 싶었다. 자신이 할 말을 당당하게 하고 전체를 보는 모습은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사람의 유형이기 때문에 더욱 멋졌다. 그건 마치 판타지 같았다. 심지어 여자가 남자를 사는 장면에서는 대리만족까지 느껴졌다.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인가 궁금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배가 고파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고기를 바싹 튀겨먹는 걸 좋아해서 먹었더니 설거지가 남았다. 설거지는 기약 없이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러곤 다시 유튜브의 알고리즘의 파도에 휩쓸려갔다. 여전히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는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도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주말에 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남들 다 쉴 때 쉬면서 내가 바라는 것을 얻는다는 건 도둑인 것도 안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해서 이런 노력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이 부럽다가도, 그들은 일생의 또 다른 부분에서 결핍을 느끼겠지 하며 자기위안한다. 가뜩이나 모른 체하고 있는데 창업자의 연락이 왔다. '이 프로그램도 있네요'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할 일인데 그가 부러울 뿐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내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그의 말이 독촉처럼 여겨졌다. 그러면서 계속 써야 하는데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며 전자음악을 들으며 천장의 먼지를 쳐다봤다. 그렇게 침대의 굴곡에 따라 누워있으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는데 예전에 공부하며 알게 된 아재였다. 가정이 있는 남자가 수작 부리는 꼴도 혐오스럽다. 이런 남자를 볼 때마다 남성 전체를 일반화시키게 된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건 애인이 있는 사람이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이러는 게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란 거다. 그게 결혼에 회의적인 이유일 것이다. 수많은 책과 영화를 봐도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거란 걸 안다.
아 인제 진짜 써야 하는데 또 내일로 미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