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생각을 하다가 회사에선 일을 해야 하니 협박전화를 넣었다. 요는 작년과 같은 일이 안 생기도록 업체에서 데이터를 잘 정리해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쌍소리 내며 싸우진 않았고 좋게 좋게 말했다. 지금도 그때 일했던걸 생각하면 열받고 업체로 가는 육억이란 돈도 눈먼 돈인 것 같다. 물론 일용직은 포함하지만 6개월에 인건비 평소에는 한 명만 들어가고 마무리시점에만 몇몇 더 투입하는데 말이다.
하루는 너무 긴데 일 년은 너무 짧다. 투자하면서 아침에 오르는 게 세시반까지 오를 거라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미래를 보지 못하다는 건 왜 이리 슬픈 것인가. 요샌 시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한때 모두가 내 것을 빼앗아간다고 느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친구도 필요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날 진정으로 생각하는 친구는 없고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되면 인간혐오가 더욱 심해진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 갔다가 자기의 결점을 숨김없이 오픈하는 사람이 나랑 가까워지고 싶다고 해서 번호를 교환했다. 사실 그녀가 (그녀의) 고유한 성격으로 인해 상대방 여자에게 공격당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대놓고 보호하진 못했지만 나도 인간이라 연민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즐기는 취미를 같이 하고 싶었다. 물음에 대한 답은 다음날에 왔고 당시 그녀가 말했던 '거절을 못해요'라는 말 때문에 답이 안 와도 괜찮았었다. 근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면 나도 의욕을 잃게 됐다. 이건 기시감이기도 한데 상대방의 온도가 나의 온도와 다름을 느꼈을 때 급격히 마음이 식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딩크였던 4살 연하 남자가 내게 연락을 끊은 거라면 이해가 된다. 대구에서 그가 저녁을 먹겠다고 왕복 4시간을 운전했을 때 최소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라도 해야 했는데 보낸 문자에 한참 있다 보낸 답변은 그로 하여금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요가를 할 때면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좋은데 동작이 끝나고 매트에 눕는 시간이 되면 또 기어 나오는 생각 때문에 뇌의 스위치를 온오프 하고 싶다. 라디오에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선 선택지를 말한 뒤에 '그렇게 안 해도 된다'는 단서를 붙이라고 했다. 그럼 반대를 원하는 인간 속성 때문에 승낙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나 복잡하고 단순하다. 요샌 긴 호흡의 폴오스터 같은 소설이 안 읽히고 투자에만 눈이 벌게져 있다. 투자란 결국 시간과 꾸준함, 인내심과의 싸움이고 이건 나와의 싸움과도 같다. 영겁 같은 죽을 때까지의 시간 속에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고 망각하는가. 시간과 싸워 이기려면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승리란 것도 종내에는 무용해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