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다만 업체가 내일 주기로 한 자료를 내가 안된다고 하니 상위에 다음 주까지 제출할 것임을 말했다. 나는 업체사정을 생각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걸 들은 상사가 월권행위라며 더 화를 냈다. 권위주의적이지 않은척하는 상사도 결국 권위적이다.
상사는 본인의견보단 상대방의견을 듣는 스타일인데 그 말인즉슨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단 이야기다. 조사결과가 작년보다 줄었는데, 경기가 안 좋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위에 보고하니 왜 그러는지 이유를 밝혀내라고 한다. 타조사와 비교해도 수치가 이상한 게 아닌데 시계열적으로 늘던 게 줄으니 불안한 것이다. 그런 계장의 불안은 상사에게 전해졌고 상사는 또 나를 조졌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경험으로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릴 필요가 없단 걸 알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새는 그가 내 자리로 와서 얘기하고 나는 눈도 안 쳐다보고 말한다. 등락이 심한 주식 볼 때마다 회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그냥 갑질하는 상사도 '참 열심히 산다'생각뿐이고 세상은 하루하루 출근하는 사람들로 굴러가는구나 그런 생각뿐이다.
사주를 봤는데 결국 뻔한 이야기였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밖에 안 되는 것이고 미래는 알 수 없었다.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된다면 사직서 쓰고 나가는 생각만 한다. 오늘처럼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보고했는데 전혀 위기 위식도 느끼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상사를 보면 저런 인간 닮지도 말고 행여라 그의 습이 내게 옮겨올까 봐 무섭기도 하다.
막상 주말이 되니 나가야 하는 모임이 하나 있었고 내 목적은 오로지 무대에 서는 거다. 토요일에 가는 것도 그걸 위한 합을 맞춰보러 가는 건데 올해는 정말 지금까지 감추고 숨겨왔던 내 본성이 뛰쳐나와 날뛰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게 이상하진 않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지난 10년간의 회사생활이 나를 내가 아닌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