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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Nov 18. 2022

[서울] 가을이 내려앉은 춘당지

창경궁

가을을 맞이해서 한달 전 즈음에 짝꿍과 창경궁을 다녀왔다. 2년 전에 가을로 완연하게 뒤덮였던 덕수궁을 보러 갔었는데, 그 때 짝꿍은 덕수궁의 가을에 흠뻑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우리가 다녀온 가을의 창경궁으로 함께 떠나보자. 

방문일시: 2022.10.22(토) 

입장료: 1,000원(만 25세 ~ 64세) 

관람시간: 09:00 ~ 21:00 

주차: 공영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매우 협소함. 대중교통 적극 권장. 



창경궁은 내가 참 좋아하는 공간이다. 서울에 있는 주요 고궁 중에서 유난히도 정이 많이 가는 고궁이 창경궁인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학교 때 학교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워낙 많이 찾아던 곳이었는데, 그래서 다른 궁에 비해 정이 더 들어서 그런 것일까. 정말 많이 들락거렸던 곳이고 궁궐의 모든 공간을 빠짐없이 둘러봤음에도 창경궁은 계속 가도 결코 질리지 않는 곳이다. 그런 창경궁을 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가을을 맞이하여 짝꿍과 함께 창경궁으로 향했다. 짝꿍은 아직까지 창경궁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가을이 내려앉은 춘당지를 오랜만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궁이 다 비슷하지 않아? 경복궁도 봤고, 덕수궁도 갔었는데?" 

"아니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 달라. 저마다의 특징이 다 있어." 


내가 가을을 보기 위해 창경궁을 가자고  했을 때, 짝꿍은 다른 곳을 가고 싶어했다. 산과 조금 더 가까워서 곱게 물드는 화려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창경궁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춘당지에 찾아온 가을을 짝꿍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고궁 정원의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짝꿍이 보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창경궁의 모습을 짝꿍에게 보여주고, 짝꿍도 그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던 마음이 가장 컸다. 그래서 서울 한복판으로 가을을 즐기러 갔던 것이다. 



창경궁에는 사람이 많았다. 창경궁에 도착하기 전, 혜화역에서부터 사람이 많았는데 창경궁에 도착하니까 매표소에 줄을 선 사람들이 꽤 많아보였다. 그래도 일행이 같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표를 사는데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일인당 1,000원씩 2,000원에 입장권 두 매를 구매했다. 항상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입장료는 너무 저렴하다. 짝꿍도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갈 때마다 입장료가 너무 저렴한 것 같다고 항상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입장료를 조금은 올렸으면 한다. 저렴한 입장료 덕분에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관람하고 향유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저렴한 입장료가 문화유산의 가치로 인식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의 가치로 문화유산의 가치를 감히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무도 저렴한 입장료 탓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 가치보다 조금 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너무 과도하게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우리나라 문화유산 관람료 기준을 높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입장권을 사고 나서, 셀 수 없이 지나다닌 홍화문을 가로질러 창경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명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창경궁 후원으로 들어섰다. 오늘의 목적이 창경궁 전각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창경궁 후원과 춘당지에 내려앉은 가을을 관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원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도 있었고, 아직은 초록색 잎을 간직한 채 추위에 강건하게 맞서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땅은 이미 떨어져버린 많은 나뭇잎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나뭇잎 위를 걸으면서 마른 나뭇잎이 발에 밟히는 사각사각한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정원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와 테이블은 가을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정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창경궁 후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춘당지가 나온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가운데 아담한 섬도 있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창경궁의 연못이 바로 춘당지이다. 그리고 이곳이 가을만 되면 형형색색 옷을 입는 나무들과 물 위에 떠다니는 낙엽들, 그리고 물에 비치는 반영의 모습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곳이 된다. 물론 가을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항상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하는 공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을의 춘당지가 가장 아름답다. 춘당지를 갈 때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잘 보존된 자연의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시끌벅적하고 복작거리는 도심에서 홍화문 하나만 들어오면 나타나는 조용한 자연의 공간이 일종의 도피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공간이 있네. 너무 좋은데?"


우리가 이곳에 갔을 때는 이미 가을이 창경궁 안으로 꽤 깊숙하게 찾아왔었다. 중간중간 녹색이 남아있는 나무도 있긴 했지만, 춘당지를 두르고 있는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춘당지 앞에서 연못을 둘러보면 정말 여러가지 색깔이 눈에 들어온다. 짝꿍은 이날 춘당지를 처음 가 본 것이었는데, 춘당지에 도착하기 전에 높게 솟은 나무로 가득한 정원에서부터 창경궁 정원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더니, 춘당지에 도착해서는 이곳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울창한 나무가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춘당지를 바라보다 보니,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가득하고 서울 도심에서 이런 느낌을 얻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서울 안에 공원도 많고,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많긴 하지만 창경궁 춘당지처럼 아늑한 느낌이 가득한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내가 그래서 창경궁 춘당지를 좋아하는 것이고, 짝꿍도 그런 나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춘당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한 바퀴 돌기 위해 춘당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춘당지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정신이 없다거나 북적이는 듯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춘당지 옆길에는 가을이 무르익은 나무들이 가득했고, 길을 가다가 연못을 바라보면 그곳에서 즐거이 헤엄치고 놀고 있는 원앙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원앙은 오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더 예쁘고 색깔이 화려하다. 너무 멀리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귀여운 원앙의 모습에 잠시 빠져있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서 대온실이 있는 구역으로 들어섰다. 대온실 구역은 우리나라 고궁이라는 느낌이 무색할 정도로 서양식으로 지어진 대온실 건물과 우리나라 전통정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을 보면서 짝꿍도 조금 의아하다고 했다. 가장 전통적인 장소여야 할 우리나라 고궁에 우리나라 전통과 조금은 이질적인 장소라고 했다. 그래서 창경궁이 겪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일제시대 침략자들에 의해 창경원이 되고 동물원을 품어야만 했던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창경궁의 역사를 간추려서 이야기해줬다. 이렇게 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해주고는 하는데 일제시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정말 많다. 처음에는 괜히 일본에 대한 안좋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진 않았는데 요즘에는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짝꿍도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고 싶어하고, 그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을 경험해 왔는지 잘 알고 있는 짝꿍이다. 


"이 공간이 참 아름다운데, 이야기를 듣고 보면 마냥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어. 

 그래도 이곳에 담긴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전달해야지. 그래야 기억하지.

 그리고 기억하고 되새겨야 다시 안 일어나지." 



대온실 구역을 볼 때마다 가슴은 아프지만, 그 구역이 참 아름답긴 하다. 그리고 가을을 완연하게 맞은 그 공간은 그 어느 시기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 구역을 지나 다시 춘당지 옆길로 돌아왔다. 여전히 춘당지 옆에는 사람이 많았고,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짝꿍도 한복을 여러 번 입었고, 결혼식 할 때 샀던 본인의 한복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나라의 전통의상을 봤지만 한복만큼 예쁘고 화려한 전통의상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조금 실용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한복 특유의 고운 색감과 단아한 느낌이 가히 최고라고 한다. 그래서 본인 소유의 한복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왔던 길을 지나 창경궁 궁궐 권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나갈까 하다가 반대편 정원도 잠시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반대편 정원은 훨씬 더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무래도 창경궁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주요 목적지가 춘당지이기 때문에 이 쪽 정원까지 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 공간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춘당지 가는 길에 있는 정원만큼이나, 이 쪽 정원도 아름답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정원을 따라가면 최근에 복원해서 개방한 종묘-창경궁-창덕궁 사이 돌담길을 갈 수 있다. 이날은 시간이 다소 늦어서 그곳까지 가보지는 못하고 돌아왔는데, 다음에 돌담길을 따라 걸어봐야겠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년 봄에 가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궁궐에도 꽃이 피는 그 계절이 오면, 다시 한 번 궁궐을 찾아야겠다. 



이렇게 창경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오늘 이야기는 궁궐로서의 창경궁보다는 창경궁 후원과 춘당지에 초점을 맞췄다. 가을은 맞이하는 창경궁 후원과 춘당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창경궁뿐만 아니라,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다른 고궁도 가을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운 가을옷으로 갈아입는다.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지는 고궁의 가을을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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