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농다리
예상보다 벚꽃이 일찍 찾아왔던 2023년 4월 초, 나와 짝꿍은 청주로 향했다. 그리고 청주로 향하는 차 안에는 한국을 찾아왔던 한국 가족이 함께 있었다. 나는 청주, 또는 청주 근처에서 어디를 보여줘야 할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가 결정한 장소는 서울에서 청주로 가는 길에 들렀다 갈 수 있는 곳, 오랜 역사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곳, 진천에 있는 농다리였다.
"벚꽃이 아직 안 피었으면 어쩌지? 많이 폈어야 할텐데..."
"괜찮아. 벚꽃 아니어도 충분히 멋진 곳이야."
짝꿍 가족이 한국을 찾은 것은 4년 만이다. 당시에는 나와 짝꿍이 부부가 아닌, 커플이었는데 이제는 부부가 되어 짝꿍 가족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그들에게 나와 짝꿍은 그들에게 어디를 보여줘야 하는지를 한참동안 고민했다. 우리는 최대한 예쁘고 멋있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고, 어느 장소를 갈 때마다 그들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해서 찾은 청주 근처 장소가 진천의 농다리였고, 우리가 농다리를 찾았던 시기가 벚꽃이 피는 시기와 맞물리는 것도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였다. 농다리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이지만, 벚꽃이 피는 시기에 가면 그 아름다움이 훨씬 배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농다리에 도착할 때까지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이 시기가 작년까지만 해도 벚꽃이 완전히 피지는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미 청주 무심천에는 벚꽃이 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서울에도 벚꽃이 피기 시작해서 벚꽃이 펴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산으로 둘러쌓인 지역이라 벚꽃이 도심에 비해 다소 늦게 필 것 같았다. 짝꿍 가족에게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우리는 내려가는 차 안에서 벚꽃이 우리를 반겨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농다리에 도착했고, 우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주차장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했고 주차장에서 농다리로 향하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농다리로 향했고, 핑크빛을 살짝 머금은 벚꽃이 농다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난 농다리 많이 와봤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 보네."
농다리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나는 농다리를 꽤 여러 번 다녀왔는데 이렇게 사람으로 가득 찬 모습은 처음이었다. 주차장에 차가 꽉 차 있는 모습도 낯설었고 농다리를 건너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사실 농다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농다리 바로 앞이 자갈밭이었고 그곳에 주차를 해도 될 정도로 개발도 되지 않았었고, 그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농다리 뒤편에 있는 초평저수지와 함께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이제는 진천에서 알아주는 명소로 발전했다. 더욱이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농다리부터 그 뒤로 초평저수지까지 이어지는 길에 벚꽃이 가득 피어나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시기에 농다리를 찾았다. 당연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짝꿍의 가족은 농다리 풍경을 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실 벚꽃이 가득 피어난 농다리의 풍경은 내가 봐도 아름다웠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감정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생거진천'이라는 글자 아래로 시원하게 내려오는 폭포와 그 주변에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벚꽃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우리는 멀리서 전경을 감상한 후에 농다리 옆에 있는 징검다리로 물을 건넜다. 농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그 옆에 있는 징검다리로 건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징검다리로 건너갔다가 농다리를 건너오기로 했다. 징검다리 근처에 있는 폭포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기도 했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벚꽃 길을 지나고 싶었다.
징검다리는 개천을 사선으로 건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길이가 농다리에 비해 훨씬 길었다. 이 징검다리를 건너다 보면 폭포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사진을 찍고 징검다리를 마저 건넜다. 이 다리를 모두 건넌 후에 1분만 더 가면 반대편에서 바라보던 폭포도 바로 눈 앞에서 보인다. 바로 앞에서 본 폭포는 훨씬 더 높게 느껴졌고, 그만큼 더욱 웅장했다. 인공폭포이긴 하지만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게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산책로에는 벚꽃이 가득 피어있어서, 마치 벚꽃으로 만든 터널을 지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머리 위에서는 벚꽃이 우리에게 그늘을 선사해 주었고, 우리 주변으로는 흩날리는 벚꽃잎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농다리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장소도 벚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농다리를 조망할 때에도 벚꽃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고,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벚꽃으로 가득한 자그마한 동산이 보인다. 그만큼 이 시기 농다리는 벚꽃 천지였다. 어딜 가나 벚꽃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지겨워지거나 벚꽃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볼 때마다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졌고, 매 장소마다 벚꽃이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고, 벚꽃과 함께하는 주변 풍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다른 벚꽃을 보는 셈이었다. 그래서 조금 걷다가 멈춰서서 벚꽃을 감상했고, 사진을 찍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원래 계획은 농다리를 넘어 초평저수지 둘레길을 따라 하늘다리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시간상 그곳까지 갈 수는 없을 듯했다.
"초평저수지까지만 보고 돌아가자. 꽃구경 하느라 바빠서 앞으로 가질 못하겠네."
결국 우리는 초평저수지까지만 갔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뒤에 일정이 있어서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수지까지 가기 위에서는 얕은 언덕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그 언덕을 넘으면 바로 저수지와 주변 산세가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언덕을 넘었는데 그 모습보다 바로 앞에 잔뜩 피어있던 벚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어딜가나 벚꽃이 우리의 시선을 유혹했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유혹을 적당히 이겨내고 저수지에 다다랐다. 농다리에서 언덕을 하나 넘어왔을 뿐인데 그곳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잔잔하게 고여있는 초평저수지의 물과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다른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농다리에서는 벚꽃과 폭포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이곳에서는 잔잔한 물결과 이를 감싸안고 있는 산의 아늑한 풍경으로 우리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그곳에도 꽃은 가득했다. 꽃은 똑같은 벚꽃이지만 꽃을 보조하는 풍경이 바뀌었으니 우리는 또 다시 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풍경과 함께하는 벚꽃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풍경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꽃을 바라보다가 저수지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야외음악당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면 초평저수지의 수면과 비슷한 높이가 되고, 저수지의 풍경과 느낌이 조금 더 친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다리의 모습도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다리를 건넜던 적이 있는데, 약간의 흔들림이 있는 다리였다. 건널 때 약간의 스릴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재미와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던 곳이다. 그곳까지 짝꿍과 짝꿍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시간이 조금 부족해서 아쉬웠다.
음악당에서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넘어왔던 언덕을 다시 넘어서 농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에 다다랐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인 정자와 벚꽃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지만, 언제나 아름다운 조화라고 느껴진다. 특히 이곳에서는 농다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정자가 만들어진 곳은 어딜가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은 실제로 사실이다. 우리나라 어딜 가더라도 정자 위에 올라서면 그 앞에 절경이 펼쳐진다. 여행을 다니다가 이렇게 정자가 보이면 그 정자에 꼭 가보는 것도 우리나라 풍경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는 정자에서 내려와서 농다리를 건넜다. 농다리는 한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다리라서 건너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건너야 하는 곳이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면 잠시 기다려주기도 하고, 앞사람의 등을 따라 부지런히 건너야 하는 다리이다. 다리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그곳을 흐르는 물살이 꽤 거세다. 그래도 돌을 이리저리 끼워맞춰서 만들어졌긴 하지만 흔들리는 돌도 하나 없었고 꽤 안정적으로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끌고 당겨서 다리를 무사히 건넜다. 그리고 주차장까지 다시 걸어와서 그곳에 있는 카페에 잠시 들렀다. 우리는 그곳에서 카페인을 충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나의 고향, 청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