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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Aug 28. 2023

[코츠월드 여행] 물 위의 마을

버튼온더워터(Bourton-on-the-Water)

이날은 코츠월드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에 가는 날이었다. 워낙 아름답기로 유명한 마을이라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곳으로, 나와 짝꿍은 가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우리가 설렘 가득 담아 찾아간 마을은 버튼온더워터(Bourton-on-the-Water)이다. 이 마을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로, 마을 중간을 흐르는 개울이 마을의 정취를 더해주는 곳이다. 



"여긴 마을 한가운데로 개울이 흐르네. 물도 흐르고 나무도 많아서 온몸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야." 


버튼온더워터에 도착한 우리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역시나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이었다. 고요하게 천천히 흐르는 작은 개울이라고 생각한 이 물줄기는 윈드러시강(River Windrush)이라는 이름의 엄연히 강이다. 버튼온더워터 마을에 있는 건물들은 코츠월드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영국 전통 건물의 형태이다. 이렇게 전통마을에 물줄기가 더해진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강이 워낙 고요하게 흐르고 그 주변으로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했고,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어느새 마을의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마을을 거닐면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강을 따라 걸었다. 강 양 옆으로는 산책로가 워낙 잘 되어 있었고, 그 길을 걷다보면 강을 건너는 작은 돌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이 워낙 아름다워서, 이 다리는 버튼온더워터의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 마을에 오전에 도착해서인지 아직까지 마을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도 있었고, 평화롭고 한적한 모습의 마을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정말 아름답고 이곳에서 하루종일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이 깨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우리의 평화로운 감상을 깨뜨릴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마을의 모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채 이 때까지만 해도 강변을 천천히 여유롭게 거닐었다. 



버튼온더워터는 마을 모습 자체만으로는 코츠월드에서 단연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아닐까 싶을 정도도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은 진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데는 역시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윈드러시강이 큰 역할을 한다. 역사가 깃든 중후한 건물과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물만으로도 이 마을의 풍경은 더할나위 없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윈드러시강을 따라 이어지는 녹색 가득한 자연의 모습과 강 위에 유유히 떠다니며 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새가 마을에 멋을 더한다. 그리고 강 옆 산책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고, 카페나 펍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마을에 활기를 더했다. 이렇게 이 마을은 아름다움에 멋과 활기가 더해져서 자신의 매력을 우리에게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마을을 길게 가로지르는 윈드러시강 양 옆으로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많았다. 잔디밭도 정말 넓었고, 강을 바라보며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았다. 그리고 맥주나 음료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카페나 펍도 자주 눈에 띄었고, 한번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는 아기자기하고 개성있는 가게도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을 누비면서 이 마을의 풍경을 세세하게 관찰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작은 상점부터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는 기념품 가게까지 흥미로워 보이는 곳은 모두 들어가봤다. 코츠월드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라는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우리는 이날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려고 작정하고 왔기 때문에, 시간에 쫓겨서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흥미로워 보이거나 독특해 보이는 곳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 마을은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 가게가 정말 많았는데, 이 가게들이 코츠월드에서만 볼 수 있는 기념품, 또는 버튼온더워터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어서 그 가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사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짐 부피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욕구를 힘겹게 억눌러야 했다. 



"마을이 어쩜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을까. 나도 저 사람들처럼 돗자리 깔고 앉아서 주구장창 쉬고 싶다." 


버튼온더워터 마을 한복판을 흐르는 윈드러시강 양 옆으로는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친구들 무리,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나이 지긋하신 부부, 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서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 강에 발 담그고 신나게 물장구 치는 아이들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온화한 미소 가득 담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백발의 부부를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자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의 나들이 모습을 보면서는 우리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많이 다니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어느새 윈드러시강 주변에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하지만 강이 정말 고요하게 흐르고 주변으로 나무가 워낙 많아서 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했다. (이 때까지는 정말 차분했다. 나중에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상점에 들어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우리는 잠시 쉬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잠시 머물만한 카페를 찾기 시작했는데, 우리 마음에 와닿는 카페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에 카페가 워낙 많아서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되긴 했지만, 우리는 그래도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에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 주변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있는 카페는 하나같이 사람이 많았고, 분위기도 다소 어수선했다. 그렇게 걷고 걷다가 메인 도로에서 뒤편으로 들어섰고 마침내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고, 곧장 들어갔다. 



"뒤에 봐바. 한글로 뭐라고 써 있는데?" 


빠르게 주문을 완료한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았는데, 짝꿍이 내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 방향으로 눈을 돌렸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글로 쓰여진 메뉴가 있었다. 코츠월드에서 한글을 발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터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이 글씨의 주인은 누구일까 카페 안을 둘러봤는데, 그곳의 직원 한 분이 한국인이었다. 그 분의 글씨이구나라고 짐작했고, 이곳에서 한글, 그리고 동향 사람들 보게 되서 반갑기도 했다. 물론 그 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저 한글로 쓰여진 메뉴 하나만으로도 약간의 유대감이 쌓인 기분이었다. 그냥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온 카페였는데, 일종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적과 정체성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직원 분이나 카페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교류도 없었지만, 한글 메뉴를 보는 것만으로도 유대감이 쌓이고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 발현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곳은 메인 거리에서 한 블록 들어온 곳이라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시끄럽거나 번잡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이 순간이 너무 평안했고 아늑했다. 우리는 이 분위기를 즐기면서 한없이 늘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커피를 최대한 천천히 마셨고,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카페에서 머물렀다. 딱히 서두를 이유도 없었고, 여행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앞으로의 여정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미뤄진 앞으로의 여정은 그때 가서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와... 사람 진짜 많네. 오전에 훨씬 더 좋았다." 


카페에서 한참을 머물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다시 윈드러시강으로 갔다. 메인 도로에 진입하는 순간 우리는 강가에 있는 사람들과 인도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에 놀랐다. 강변 잔디밭에는 여유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사람으로 꽉 들어차 있었고, 그 주변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오전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활기가 너무 넘쳐서 약간 정신없을 정도였다. 사람 많은 곳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우리에게 이 마을의 매력이 다소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전체적인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마을이라서 오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코츠월드 마을이라고까지 생각했었는데, 버튼온더워터 마을의 오후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고 있었다. 


원래는 마을을 거닐면서 조금 더 머물다 다음 장소로 넘어갈 예정이었는데, 우리는 조금 빠르게 다음 마을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을 헤치면서 돌아다닐 엄두가 안났고, 코츠월드라는 시골마을에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우리가 계획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이 다소 실망이 담긴 내용이긴 하지만, 버튼온더워터는 단연 코츠월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한 손에 꼽힐만한 곳이다. 영국의 전통적인 마을과 그 가운데를 흐르는 고요한 강이 정말 풍경화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성수기가 아닌 시기에 이곳을 찾으면 조금 더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과 고즈넉하면서도 평화로운 마을의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마지막에 쓴 감상은 나와 짝꿍의 주관적인 이야기로 남겨두고, 이 마을의 절대적인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코츠월드를 여행한다면 꼭 가봐야 하는 장소로 이 마을을 추천한다. 버튼온더워터 마을은 코츠월드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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