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코 폭포/세자매 전망대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숙소도 그냥 지나치고, 글렌코도 지나고 우리는 다시 A82번 도로 위를 올라탔다. 전날 시간이 다소 부족해서 그냥 지나쳤던 장소를 보기 위해 돌아간 것이다. 장엄한 풍경이 가득한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오늘은 A82번 도로를 다시 찾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어제 그냥 지나친 데 가자. 거기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려."
A82번 도로에 오른 우리는 글렌코 마을을 지나 어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어제 시간이 늦어서 미처 멈추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곳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 지나치면서 본 풍경이 너무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당시 차 안에서부터 다음 날 꼭 다시 돌아오자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차 안에서 빠르게 지나가면서 보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풍경 근처로 들어가서 자연의 장엄함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고, 자연 풍경을 차분하고 느긋하게 감상하고 싶었다. 이틀 연속 찾아온 곳이지만 이 도로를 운전하면서 보는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이 자연 속에서 운전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글렌코 마을을 지나고 10분 정도를 더 달렸을까, 우리는 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리가 온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그곳에는 절벽을 따라 떨어지는 3단 폭포가 있었다. 이곳은 어제 짝꿍이 차 안에서 보고는 잠시 멈췄다 가자고 얘기했던 곳이었다.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찾아온 것이다. 우리가 일부러 찾아온 이 장소는 글렌코 폭포(Glencoe Waterfall)이다. 사실 폭포가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고 유량이 많아서 압도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 아늑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폭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에 한 번의 붓터치로 만들어낸 포인트처럼 산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이랜드 특유의 무채색 느낌이 가득한 자연 풍경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폭포수와 그 과정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웅장한 풍경에 입체감을 더했다.
3단계로 나눠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는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물이 너무 맑아서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귓가로 들려오는 물소리와 녹음 가득한 공간에서 맑은 물 웅덩이를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너무도 청량하고 상쾌했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 근처까지 내려가서 발이라도 담갔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앞에는 장애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폭포 위를 보니까 사람이 있었는데, 왜 그곳까지 올라갔을까 의문이었다. 물론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훌륭하긴 하겠지만, 딱히 오르는 길도 없고 경사도 꽤나 가파른 곳을 굳이 올라가야 했나 싶었다. 그런데 구글에서 찾아보니까 그 위에 천연 온천탕처럼 물 웅덩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온천이 아니라 물은 매우 차가울 것이다) 더운 날에는 그곳에 잠시나마 몸을 담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가도, 울타리를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이제 조금 이동해볼까? 아마 다음 주차장에서 바로 서게 될 거야."
우리는 차를 타고 5분도 채 이동하지 않았다. 바로 우리가 점찍어 두었던 전망대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 번째로 멈춰선 곳은 세 자매 전망대(Three Sisters Viewpoint)이다. 이곳은 웅장한 산맥과 그 사이로 이어지는 골짜기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다. 주차장에서 아주 조금만 올라가면 전망대가 바로 나온다. 그곳에서 골짜기 방향을 바라보면 산이 양 옆으로 병풍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로 골짜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골짜기를 따라 트레킹 코스가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유유히 그 길을 걸어봤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이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곳의 풍경은 그 골짜기 방향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눈을 어느 쪽으로 두더라도 그곳에는 산이 있었다. 나무가 거의 없고 바위로 뒤덮인 산이 대부분이었는데, 다소 삭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 모습이 산의 웅장함을 증폭시켰다.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라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사진을 안찍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삼각대를 설치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와중에 골짜기에서 돌풍이 불어오는 바람에 삼각대가 넘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렌즈 필터만 깨지고, 렌즈 몸통과 카메라 본체는 멀쩡했다. 하이랜드 산악 지형의 날씨와 돌풍을 경시했던 대가였다. 그래도 카메라가 완전히 박살난 것은 아니었기에, 대가를 그나마 싸게 치른 것일까. 그리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카메라가 넘어진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카메라 걱정은 나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해도 되기 때문에 일단 우리 주변에 있는 이 풍경을 감상부터 했다.
"진짜 마지막으로 여기만 보고 가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세 자매 전망대를 떠난 A82번 도로의 경치를 감상하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그대로 숙소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한번 더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고, 그 옆에는 한 가족이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고 있었으며, 조금 더 들어가면 하얀 농가가 높은 절벽 아래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아치트리옥탄(Loch Achtriochtan)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높게 솟아 바위로 뒤덮인 봉우리나 산 사이로 이어지는 골짜기의 풍경은 아름답긴 했지만, 앞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봉우리 아래 자리잡은 단 하나의 농가이다. 절벽 아래 자리하고 있는 이 농가가 이 풍경에 특별한 요소가 되었고, 이로 인해 이곳의 모습은 앞에서 본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근처에 웅장한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어떻게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이 집의 지형을 살펴보면 앞뒤로는 높은 봉우리가 든든하게 벽을 세워주고, 양 옆으로는 호수와 골짜기가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이 농가의 주인은 이런 풍경을 원할 때마다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부럽기도 했다. 항상 보면 특별한 감정이 사라지려나... 그래도 이 모습을 처음 본 우리는 풍경에 압도되었고 그 순간만큼은 그 주인이 꽤나 부러웠다. 그리고 농가를 자세히 보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집 앞에는 많은 양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 양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더 걸어가다가, 사유지라는 표지판을 보고 더 이상 들어가기 않았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주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을 금물이기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웅장하고 장엄한 자연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잘 쉬고 다음날 우리는 하이랜드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하이랜드에서 너무도 가고 싶었던 곳, 내가 영국에 살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여정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