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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Apr 04. 2024

[스코틀랜드] 스카이섬 가는 길

코만도 메모리얼/오이치 다리

오늘은 드디어 우리가 염원했던 스카이섬(Isle of Skye)으로 가는 날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스카이섬을 가기 위한 전초전이었달까, 우리는 스카이섬으로 향하는 이날을 많이 기다려왔다. 하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글렌코(Glencoe)에서 스카이섬까지는 약 3시간 정도 걸리고, 중간에 들러볼만한 곳이 있어서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스카이섬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이동했다. 그리고 스카이섬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몇 군데를 들렀다. 이번 포스팅은 우리가 멈췄던 장소 중에서 두 군데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는 길에 기념공원 있다. 잠시 쉬었다 가기 괜찮을 것 같아."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을 벗어나고, A82번 도로를 따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던 짝꿍이 잠시 쉬었다 갈만한 장소를 말해줬다. 사실 오래 운전한 것이 아니라서 조금 더 갈 수 있었지만, 기념공원이면서 동시에 구글맵에 벤 네비스 전망대(Ben Nevis Viewpoint)라고 쓰여져 있는 이 장소에서 잠시 멈췄다 가기로 했다. 코만도 메모리얼 기념공원은 생각보다 컸고, 잘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영국인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그들을 상징하는 동상과 추모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추모 공간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숙연한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아내며 추모했다. 


그리고 이 공간을 사람들이 찾는 다른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벤 네비스 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 네비스 산은 영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산이나 트레킹을 위해 찾는 곳이다. 포트 윌리엄에서도 이 산을 잘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주변의 모습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주변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볼만한 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풍경만 열심히 감상했다. 하이랜드의 풍경은 언제 어디서 봐도 장엄하고 아름답다. 특히 구름이 살짝 걸쳐있는 벤 네비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실 산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서인지 높이에 비해 훨씬 더 웅장하게 보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잠시 쉰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멈춰섰다. 지도에서 오이치 다리(Bridge of Oich)를 발견했고, 그 주변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잠시 들렀다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 다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만, 주차장을 의미없이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테니 잠시 멈춰서 우리가 그 의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아버찰더 스윙 브리지(Aberchalder Swing Bridge)라는 다리가 하나 더 있었는데, '스윙 브리지'라는 이름에 묘하게 끌리기도 했다. 오이치 다리 주차장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주차장이라기보다는 그냥 공터였는데, 대략 차 5~6대 정도가 댈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다리를 보려고 멈춰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테니, 주차장이 꽉 찰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차도를 따라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아래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타난다. 그리고 물줄기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자그마한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오이치 다리이다. 계곡과 하나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모습이었지만, 멀리서 볼 때는 그렇게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다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조금 더 걸어갔다. 그리고 몇 분만에 우리는 오이치 다리 바로 앞에 서게 되었다. 멀리서 바라봤을 때와는 다르게 가까이에서 바라본 다리는 생각보다 고풍스러웠다.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낡았다는 느낌보다는 되려 옛 손길을 잘 간직하고 있는 투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 다리 위에 올라서면 오면서 봤던 계곡이 아래로 흐르고, 아름다운 풍경이 또 다시 우리의 눈동자를 간지럽힌다. 


다리 건너편에는 개인 집이 있었는데, 그 앞마당에 차가 있었다. 이는 집주인은 이 다리 위를 차를 타고 건넌다는 뜻인데, 과연 이 다리가 충분히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웠다. 물론 아직까지 아무런 사고가 없었고, 집주인도 안전을 확인하고 다니는 것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차를 지탱하기에 다소 버거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 집주인이 앞으로도 이 다리를 오랫동안 무사히 이용하면 좋겠다고 기원하면서 다리를 빠져 나왔다. 



"오오, 저 다리 움직인다. 보고 가자!"


우리는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는데, 다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소리일까 잠시 살펴보는데, 다리 건너편에 배 한 척이 있었고 다리 위를 건너다니는 차들이 멈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일일까 잠시 서서 구경하는데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들이 오갈 때에는 그냥 평범한 다리인 듯하여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서 미처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까 좌우로 회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다리였다. 그래서 운하는 지나다니는 배들이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움직여서 뱃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운하가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스코틀랜드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우리에게는 너무도 낯설고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이제서야 우리는 구글맵에서 봤던 이 다리의 이름에 있는 스윙 브리지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돌아가는 다리라는 뜻의 스윙 브리지 이름이 그 의미 그대로 적용되는 다리였다. 우리는 다리가 완전히 열리고 배가 지나간 후, 다리가 다시 연결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계속 지켜봤다. 배가 한 척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리가 다시 연결될 때까지 도로 위에 있는 차들은 계속해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의 하나일 것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나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 모두 그들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서로의 삶을 느리게 한다고 불평할 수도 있을 테지만, 많은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자신의 차례가 오기까지 평안하게 기다릴 것이다. 이 다리 위에서 기다리는 차들과 배를 보면서 문득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양성을 조금 더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이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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