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아우구스투스(Fort Augustus)
스카이섬(Isle of Skye)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비교적 큰 마을에서 점심도 해결할 겸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바로 포트 아우구스투스(Fort Augustus)라는 마을로 관광객이 정말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에는 식당, 카페, 기념품 상점 등도 많아서 먹고, 마시고, 즐길 거리가 많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는 왜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일까. 오늘 포스팅은 포트 아우구스투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이치 다리(Bridge of Oich)를 떠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마을에 들어섰다. 사실 우리는 이 마을을 지나지 않고 스카이섬으로 곧장 가려고 계획했다. 이 마을이 우리가 가는 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일종의 관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스카이섬에서 나오는 길에 멈췄다 갈까도 염두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날 잠시 보고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 시간도 다가오고 있어서 이 마을에서 먹을만한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네스호에 진짜 괴물이 있을까?"
그렇다면 왜 포트 아우구스투스란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마을이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대표하는 호수, 네스호(Loch Ness)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이랜드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남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그들은 이 마을에서 네스호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남북으로 길게 바늘처럼 이어지는 네스호는 하이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호수 안에 산다고 알려진 네시(Nessie)라는 괴물로 인해 유명해졌다.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종류의 생명체인지 모든 것이 미스테리인 네스호의 비밀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2023년에 영국에서 50년 만의 최대 규모로 네스호 괴물을 수색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고 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스토리로 인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네스호를 찾는다. 네스호에 사는 괴물을 실제로 보게 되리라는 희망과 함께 말이다.
우리도 이 마을에 왔으니까 네스호를 먼저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네스호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워낙 많이 가고 있어서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갑작스레 소나기가 퍼붇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는 우리는 서둘러 커다란 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도 근처에 큰 나무가 있어서 비를 피할 수는 있었는데, 이 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영국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고 워낙 유명하기에 이 비도 곧 그칠 것이라는 희망은 있었다. (실제로 영국에 살면 하루에 모든 종류의 날씨를 경험하는 날이 많다.) 그 희망에 응답한 것일까, 세차게 내리던 비는 약 15분 후에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쳤다. 항상 불평만 하던 영국의 변덕스런 날씨에 감사하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비도 그쳤으니 우리는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양 옆으로 산이 있고 그 사이에 물길이 길게 이어지는 호수, 물 아래에 괴물이 산다고 알려진 호수, 바로 네스호이다. 과연 명성만큼이나 네스호는 거대했고, 주변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비가 한바탕 쓸고 간 이후라 날씨가 흐려서 약간의 신비감마저 들었다. 날씨가 맑았다면 훨씬 더 깨끗한 시야로 네스호를 조망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날씨에서 바라보는 네스호도 충분히 웅장했다. 네스호 위에는 유람선이 열심히 오가고 있었다. 네스호를 깊숙하게 들어가보고 싶다면 유람선을 타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포트 아우구스투스에 유람선을 운영하는 업체가 몇 개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시간 관계상 유람선까지 타보지는 못했다.
네스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네스호를 가만히 관망하는 사람, 네스호와 함께 사진을 남기는 사람, 가까이 다가가서 네스호를 만져보는 사람 등 그들은 각자만의 개성에 따라 네스호를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네스호와 주변 풍광을 관망했다. 광활한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감과 장엄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후에 네스호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각자 찍어주기도 하고, 둘이 함께 찍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네스호와 함께 시간을 보낸 우리는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그곳을 벗어났다. 마을까지 돌아오는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네스호를 보기 위해 우리를 지나쳐갔다. 그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네스호라는 하이랜드의 명소를 곧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가득찬 것이다. 그리고 네스호는 그들의 기대감을 실망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네스호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마을은 참 아기자기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고, 많은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정신없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되려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만 보였다. 더욱이 잔잔한 운하와 그 위에 떠 있는 배들이 그런 분위기를 더했다. 하지만 마을로 가까워지면서 우리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는 조금씩 멀어졌다. 그리고 좋게 말하면 활기, 안 좋게 말하면 산만한 분위기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활기와 산만함, 단어의 선택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단어였을까. 음... 처음에는 활기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산만함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 넣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자 기가 빨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둘 다 'I'여서인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금세 기가 빨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래서인지 네스호 옆에서 가만히 호수를 바라볼 때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알아봤다. 그냥 간단하게 먹고 가던 길을 가고 싶어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 같은 곳을 찾아봤는데, 마땅히 눈에 띄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구글맵에서 보이는 곳을 찾아가면 사람이 많았거나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래서 점심은 가는 길에 보이는 곳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마을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마을 한복판으로 흐르는 운하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주위에서 전해지는 북적거림이 한결 사라진다. 물결 하나 일지 않는 잔잔한 운하와 그 주변으로 보이는 영국 시골 특유의 주택과 풍경이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이런 풍경과 분위기라면 자리에 앉아서 하루종일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포트 아우구스투스는 한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구경하기에 정말 좋은 마을이다.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을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운하 위에 놓인 돌다리도 건너고, 다리 위에서 마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물과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습이 이렇게 달라질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잠시 후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마을에 조금 더 머물지 못함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여정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더 컸다. 우리가 하이랜드 로드트립을 하기로 마음먹게 만든 그 장소, 하이랜드 로드트립의 정수라고 불리는 장소, 바로 스카이섬으로 향하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스카이섬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