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가찬 다리(Sligachan Old Bridge)
스카이섬의 평화로운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스카이섬 탐방에 나섰다. 전날 계속 비가 내려서 날씨에 대한 걱정을 계속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날씨가 괜찮아졌다. 화창했다가 흐렸다가를 반복하긴 했지만, 그래도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영국, 그 중에서도 하이랜드에서 날씨의 변덕은 쉬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숙소를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스카이섬에서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오래된 돌다리, 슬리가찬 다리(Sligachan Old Bridge)이다.
슬리가찬 다리는 스카이섬을 관통하는 메인 도로의 바로 옆에 있다. 우리는 어제 숙소 가는 길에도 이 다리를 봤는데, 숙소에서 메인 도로까지 나오는 길이라서 다음 장소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멈췄다. 이 다리에는 마땅히 주차장이 없어서 어디에 주차를 해야할 지 고민했는데, 바로 앞 호텔 주차장에 차들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이 때가 체크아웃과 체크인 중간에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주차장이 많이 비어있어서 차를 쉽게 댈 수 있었다. 손님이 많이 시간에도 호텔 측에서 주차를 허락할지, 그리고 주차장에 주차 공간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쉽게 차를 대고 슬리가찬 다리를 구경하러 갈 수 있었다.
"이런 다리는 정말 많이 봤는데... 별로 특별한 것 같지 않은데 왜 유명한 걸까?"
"음... 아마 다리 주변의 풍경 때문이 아닐까?"
호텔에서 2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슬리가찬 다리에 다다르게 된다. 강 폭이 넓지는 않아서 다리 규모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오래된 돌다리 특유의 중후한 감성이 가득 느껴졌다. 다만 이렇게 오래된 돌다리는 지금까지 꽤 많이 봤기에 이 다리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리만 봤을 때는 왜 이 다리가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우리는 다리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다리 건너편에는 일찍부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주변의 모습을 열심히 감상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커다란 동상도 하나 보였다. 우리는 일단 동상까지 가서 이곳의 특별한 매력을 찾아보고자 했다.
우리는 멀리 가지 않아 그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역사를 머금을 돌다리를 건너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풍경뿐 아니라,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들려주는 재잘재잘 물소리는 멋진 풍경에 청각적 효과를 더해주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동상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장엄한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산과 물,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라는 사실은 한국과 똑같았지만, 이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최종 산물은 한국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그 다른 풍경이 너무도 웅장했고 압도적이었다. 우리를 압도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매우 컸다.
우리는 동상까지 걸어갔다. 동상의 주인공은 두 명의 남성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농부나 지역 주민들을 대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상의 의미를 찾아보니까 스카이섬을 사랑하고 이 섬에 있는 산을 많이 탐험하여 수많은 루트를 개척한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상이라고 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살았던 이 두 사람 중 한명은 스카이섬에서 태어난 일반 농민인 존 맥켄지(John Mackenzie)이고, 다른 한명은 스카이섬을 자주 찾았던 교수인 노르만 콜리(Norman Collie)이다. 콜리 교수가 스카이섬을 찾았을 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친구이자 스카이섬을 함께 개척하는 동반자가 되었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0년에 이 동상이 만들어졌다. 동상에서 앉아있는 사람이 맥켄지이고, 서 있는 사람이 콜리이다.
동상은 그들이 개척한 이 섬의 아름다운 장관을 계속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동상의 주인공이 바라보는 곳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동상 주변을 돌면서 그들이 개척해낸 스카이섬의 풍경을 한껏 감상했다. 150여 년 전 이들의 노력으로 지금 우리가 스카이섬의 자연을 조금 더 편안하고 세세하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곳에서 바라보면 풍경은 정말 계속해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장소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계속해서 붙잡았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려고 슬리가찬 다리를 다시 건널 때에도 우리는 다시 한번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한번 지나온 길이었지만, 그 다리를 그대로 지나가기에는 그곳에서 오감으로 느껴지는 효과가 정말 강렬했다.
이렇게 우리는 슬리가찬 다리를 어렵게 떠났다. 스카이섬에서 찾아간 첫번째 장소였는데, 이곳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커진 기대감과 함께 우리는 스카이섬의 중심 도시인 포트리(Portree)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