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랑곰 Jun 15. 2021

우리가 애정하는 서울의 숲

서울숲

서울숲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짝꿍을 데리고 계절에 상관없이 여러 번 다녀왔는데, 자연스럽게 짝꿍도 서울숲을 애정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서울숲과 별로 멀지 않아서 시간 날 때마다, 혹은 어딘가 가고 싶긴 한데 어딜 가야할지 정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서울숲으로 향하곤 한다. 오늘은 우리의 기억이 많이 담겨 있는 공간, 서울숲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래 사진은 서울숲의 봄과 가을밤에 찍은 사진들이다. 



"여기 근처에서 일했었어?"

"응. 회사가 공원 바로 옆에 있었어."

"퇴사하고 어떻게 공원을 계속 왔어? 난 그 근처에 잘 안가게 되던데..."

"글쎄... 그냥 이 장소가 좋았어."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회사가 서울숲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서 점심 시간에, 또는 퇴근 이후에 서울숲을 정처없이 걷곤 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서울숲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보통 회사를 그만두면 그 근처를 잘 가지 않게 되는데, 나는 서울숲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 이후에도 꾸준히 서울숲을 드나들었다. 그만큼 서울숲이 좋았고, 공원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나만 아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지나 짝꿍이 한국에 왔고, 나와 짝꿍이 같이 살게 되었다. 같이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의 삶에 방식에 스며들기도 했다. 나의 삶의 방식에 짝꿍이 스며든 것이 바로 여행이다. 짝꿍은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어떻게 또는 어디로 가야할지, 그리고 혼자 가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여행을 그렇게 자주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나를 만나고 우리는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짝나를 통해서 짝꿍은 서울숲과 첫만남을 가졌다. 그게 어느새 약 3년 전이다. 그 이후에 짝꿍과 서울숲은 꽤 친한 친구가 되었고, 이제는 보고싶을 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서울숲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에는 목련, 벚꽃과 같은 예쁜 꽃으로 옷을 입고 있다가, 여름이 되면 짙은 녹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가을에는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 오색찬란한 모습을 보여주고, 겨울에는 앙상한 나무가 가득한 공간이 된다. 가끔 운이 좋으면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서울숲을 볼 수도 있다. 서울숲이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수많은 빌딩들 사이에서는 계절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서울숲과 같은 공원을 많이 찾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 있는 나의 계절감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는다. 그게 내가 서울에서 계절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이고, 짝꿍도 나의 방식을 따라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숲은 우리가 1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 느끼는 공간이다. 



"오늘은 야경을 보러 가볼까?"

"어디로 갈건데? 저녁 때는 쉬고 싶은데..."

"에이, 잠깐 갔다오자! 별로 안 멀어!"


어느 가을 날 저녁, 쉬고 싶어하는 짝꿍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내가 데려간 곳은 당연히 서울숲이었다. 서울숲 옆에서 일할 때는 꽤 자주 보던 모습이었는데... (야근이 많았...) 그 이후에는 불을 밝힌 서울숲의 모습을 자주 보지 못했다. 문득 오랜만에 서울숲의 야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서울숲으로 향했고 불이 환하게 밝혀진, 그리고 인적이 드물어진 조용하고 고즈넉한 서울숲을 마주할 수 있었다. 


조명이 가득한 서울숲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낮에는 자연 그대로의 색으로 가득한 이곳이 밤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가 갔던 가을날 밤의 서울숲은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공간이었다. 계절마다 조명의 색이나 형태를 바꿀 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 서울숲에서 바라봤던 야경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단풍과 조명이 더해져서 더욱 진하고 다양한 색이 만들어졌다. 


피곤하다면서 쉬고 싶어하던 짝꿍도 서울숲에 도착하자마자 에너지를 회복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명은 짝꿍에게 비타민이다. 집에 가고 싶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을 보면 금방 눈에 생기가 돌아오고 집에 가자고 하는 말을 번복하곤 한다. 그런 짝꿍을 잘 알고 있어서 억지로 데려나오긴 했어도 불평할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짝꿍도 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내가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나를 따라 나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의 방식에 잘 녹아들고 있다. 




이전 02화 응봉산에서 봄을 맞이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