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로전부인가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은 다양하다. 밝은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 출근길이 막혀 부랴부랴 횡단보도를 건너는 직장인,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건물주는 각자의 목표가 있다. 그리고 한 순간으로 살펴본 그들의 삶은 과정이며 결과다. 돈, 건물, 명함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번영과 안정을 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찌 됐든 간에 성공을 꿈꾼다.
사회에서 성공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확실한 길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되거나, 명문 대학에서 수학해 5급 공무원으로 급제하거나 회계사, 로스쿨과 같은 전문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메리트를 갖는지 알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오랜 수련(수험) 기간을 인정받아 높은 연봉과 함께 사회적 명성도 보장받는다. 학부모도, 학생도 이런 커리어를 밟기를 바라지만, 높은 문턱으로 매년 한정된 인원들만 이 성공을 맛볼 수 있다.
첫 번째길은 확실히 사회에서 높은 인정을 받고 평균적으로 가장 ‘성공’에 가까운 선택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험난한 창업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의대 진학을 고려했을 정도로 전문직종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군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세상의 성공 방정식은 절대적이지 않다. 높은 연봉을 보장받지만, 고소득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찬란할 20대를 희생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의대생의 공부량은 일반 대학생의 공부량을 아득히 뛰어넘으며, 여러 전문직종 시험도 최소 2~3년 동안 사회와 연을 끊어야 할 정도로 악명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어떤 이유로든 첫 번째 길을 걷지 않는 사람들은 두 번째 길을 걸어야 한다. 문턱을 넘는 것은 어렵지만, 정해진 로드맵을 따라가면 되는 일반적인 성공 방정식보다 더욱 까다롭고 복잡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도 이 길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바로 나만의 길이다.
개성의 시대다. 누군가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나쁘게 바라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여가, 취미, 특기뿐만 아니라 성공조차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여행에 초점을 둔 라이프 스타일도,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라이프 스타일도 모두 인정받고 존중받는다. 모든 게 평화로울 것 같은 이 길도 문제는 따른다. 바로 이정표가 없다는 것.
나만의 길은 사실 길이 아니다. 길보다는 풀이 나있는 들판과 같다. 어디가 올바른 길인지, 구렁텅이인지 알려줄 사람도, 표지판도 없다. 직접 디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지 조차 알 수 없다.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사과만을 보고 가장 맛있는 과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과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더 맛있는 과일을 찾지 않고 결국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멜론을 맛본다면 얼마나 슬플까? 과일이 자신의 삶이라면 더더욱 그 슬픔이 배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이런 우연의 기회에 상당 부분 노출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70%가 고등교육을 받는다. 이는 선진국 집단이라고 불리는 OECD 평균인 44%를 한참 웃도는 통계치다. 이는 우리나라의 과잉교육의 병태로 지적되고는 하지만, 어찌 됐든 70%는 고등 교육을 받아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대학교는 굉장히 특별한 공간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올라온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한데 모여 친구가 되고 어떤 일을 함께 수행한다.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건 상당히 힘들어진다. 사람뿐만 아니라 대학교는 독서나 여행 등을 장려하며, ‘문화의 날’과 같은 행사로 문화생활을 즐기도록 유도한다. 접하기 어려운 해외 문화도 교환학생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손쉽게 느껴볼 수 있다.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사소한 것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기회를 주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다만, 문제는 이런 조그마한 순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아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당면한 문제인 시험, 학점, 결과 등에 매몰되어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기 어려워진다. 이는 한국이 바라는 인재상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는 조숙한 인재를 좋아한다. 고등학생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길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응원하고 대견하다며 용돈을 쥐어주고는 한다. 하지만 이건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기회들을 던져버리고 지금까지 바라 왔던 하나의 결과로 자신의 인생을 귀결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조숙한 학생들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가장 빨리 ‘효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당면한 국영수 위주의 공부에 혈안이 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목표를 향한 가장 빠른 길을 따라가게 된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객관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듯이, 오늘과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실패로 돌아오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비슷한 교육을 받고 같은 선택을 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보증 수표가 된다.
하지만 이는 외부 변수에 굉장히 Fragile 하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 왔던 삶이 우연히 자신 앞에 놓여있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용기를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항상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염원했던 목표 안에는 지금 우연히 만난 삶과 일절 관련이 없었고 정보가 없으니 그는 선택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교양이다. 교양은 여러 분야를 얕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교양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말을 하고는 한다. 나는 이것을 여러 우연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시야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1과 2 사이에 수많은 실수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최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엔지니어가 갑작스레 예술가로 전향하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항상 예술적인 영감을 가지고 삶에 임했던 엔지니어였다면 충분히 그럴듯하다
시간은 정해져 있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선택은 빨리 할수록 좋다고들 말한다. 이는 모두 ‘최고의 선택지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줄 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건 최고의 스승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비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고등 교육이 기계공학과 학생만을 위한 대학이 아닌 여러 학과가 모인 종합대학 형태로 발전한 이유이며, 우연 속에 학생들을 내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우연의 힘을 믿는다. 우연히 만나는 순간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믿는다. 여러 선택지를 두고 장고를 거듭해 내린 결론이 갖는 지속성, 확신을 믿는다. 교양은 이러한 우연을 기회로 바꿔주는 도구다. 이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며, 내 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타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도 있다.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지평을 넓히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