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와 함께 하는 아침 시편 묵상 Part 1
'몰입'이란 주제로 진행된 청소년 수련회에서 아침 묵상을 맡았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귀한 걸 전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적었어요. 좋은 울림이 있었길 바라며, 브런치에도 나누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시편 37:4[새 번역]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어 보신 적 있나요?
스페인 남부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이집트로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떠날 결심을 한 것은 이집트 땅에 감추어진 보물을 발견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페인과 이집트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대략 6,000km 된다고 해요. 17살 전후의 한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여정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위에 서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까지의 그의 여정에는 여러 시련과 고비들이 있었습니다.
산티아고는 우연히 ‘멜기세덱’이라 불리는 늙은 왕을 만나게 되면서 꿈을 실현할 용기를 얻습니다. “우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표지를 보여주지. 중요한 건 그것을 알아보는 거야.” 왕의 이 말은 산티아고를 이끈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표지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거나 길을 잃어버릴 때, 이정표(표지)는 우리에게 길을 찾는 중요한 정보가 되어 주지요. 산티아고에게 첫 번째 표지는 보물을 찾게 되는 반복된 꿈이었어요. 그리고 미천한 양치기의 신분이었던 산티아고가 정체를 숨긴 채 거리를 배회하던 왕을 만나 그로부터 꿈을 지지받았다는 놀라운 사실은 두 번째 표지가 되었지요. 산티아고는 가지고 있던 양 6마리는 판 값은 여행의 경비로 삼고, 나머지 6마리는 왕에게 배움의 값으로 지불하고서 곧바로 항구도시 모로코로 떠났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산티아고의 꿈을 향한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항구도시에서 산티아고는 사기꾼을 만나 양을 판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망한 그는 다시 고향에서 양들을 치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크리스털 그릇 상점에서 1년간 일하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는 12마리의 양을 살 돈을 충분히 벌게 되었고, 이집트 피라미드가 있는 곳까지 1년을 꼬박 걸어가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지요. 꿈을 위해 치러야 할 값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크리스털 상점 주인과의 대화에서 “마크툽”이란 또 다른 표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크툽(Maktub),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지요. ‘마음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산티아고는 꿈속의 보물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여정은 산티아고에게 정해진 운명 같았기에(마크툽), 꿈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는 낙타를 타고 이집트를 횡단하는 무리에 합류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사막을 횡단하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거든요. 다행히도 잠시 숨죽이기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산티아고는 연금술에 심취한 영국인을 만나서 ‘전설적인 연금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를 보물로 이끄는 또 다른 강력한 표지가 되었습니다. 연금술사와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이어서 말해줄게요.
산티아고는 위험천만한 사막 횡단의 여정 중, 두 마리의 매가 하늘에서 싸우는 장면을 통해 곧 다시 전쟁이 일어날 걸 예측하게 됩니다. 산티아고는 고향의 초원에서 양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자연의 언어’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직관할 수 있었지요. 도착하게 된 오아시스에서 그곳에 사는 부족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산티아고를 통해서 그 부족은 적들의 기습에 대비할 수 있었어요. 이 일이 일어난 이후로 산티아고는 막대한 금을 보상으로 얻었고, 오아시스 지역의 ‘고문’이란 관직을 얻게 되지요. 그리고 검은 눈의 아름다운 여인 파티마와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평생을 양치기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꿈처럼 놀라운 세계가 산티아고 소년에게 실제로 펼쳐진 거예요.
산티아고가 괴짜처럼 꿈에 집착하며 비현실적인 여행을 떠날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매일 같이 그가 재미있게 보았던 책 이야기를 양들에게 들려주며, 드넓은 초원 너머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날마다 생각하며 애정을 품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양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었지만, 사실 자신이 미지의 세계에 잔뜩 몰입한 순간들이었던 것이지요. 늙은 왕도 소년이 꿈 이야기할 때 소년의 얼굴이 생기로 차오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 위험천만한 꿈의 여정을 기꺼이 지지해 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도 ‘몰입’하면 가능한 이야기가 되고, ‘몰입’이 이끄는 곳에는 놀라운 기쁨이 숨겨져 있답니다.
산티아고가 처음엔 단지 반복된 꿈 하나로 먼 여정을 결심했듯이, 우리도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갈망 때문에 도전하게 되고 쉽지 않은 모험을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갈망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마음을 쏟고 몰입할 때 기쁨이 생기고 그 기쁨이 소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단지 금과 같은 보물이 아니라, 꿈을 좇아 나선 여정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실수하고, 사랑하고, 예기치 않은 보상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보물을 얻게 됩니다.
시편 37편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억지로 따라가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쁨 속에서 소망을 갖게 하시고, 몰입을 통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가시는 분입니다. 진짜 기쁨은 억지로 주어지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일이나 대상에게 몰입할 때 그 안에서 진짜 기쁨이 생기고, 그 기쁨이 우리 안의 갈망을 선명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몰입하고 싶다면 억지로 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기쁨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때 우리의 깊은 소원도 우리가 몰랐던 보물처럼 내 안에서 천천히 드러나게 될 거예요.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