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의 생존방식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놀라운 분량의 필사를 했다. 마치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것처럼 문서로 실컷 배를 채우는 듯했다. (...) 잠시 멈추는 법도 없었다. (...) 그가 쾌활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p27)
“날 때부터 운이 나빠서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상상해 보면, 끊임없이 사서를 취급하고 분류해 불태우는 것보다 더 그 절망을 키우는데 적합해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p93)
『농가의 작은 서재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그는 소설가이다. 큰 체격은 아니지만 다부진 몸집에 얼굴이 불그스레하며 머리가 길고 수염을 덥수룩하다. 심혈을 기울여 쓴 장편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고 팔리지 않고 출판사에 재고로 쌓여있는 책들은 그마저도 화재로 재가 되었다. 소설 한 편을 더 발표하였지만 결과를 더욱 참담했다. 남자는 한 월간지에 헐값에 글을 팔기로 하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글을 쓰다 말고 연신 창밖을 내다본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네 살 먹은 아들은 밖에서 혼자 놀고 아내는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다. 농장은 장인에게서 빌려 마련한 것이다. 생계를 꾸릴 일이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