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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책방 Dec 02. 2024

<사피엔스> 대신 읽어드립니다: 인지혁명

이야기, 질서, 대규모 협력

관련글: 유발 하라리 유니버스 탐험 매뉴얼


유발 하라리 유니버스 인류 1부작 <사피엔스>는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 인지혁명
2. 농업혁명
3. 인류의 통합
4. 과학혁명


목차는 시대의 흐름 순으로 인류가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 보여준다. 또한 인류를 지배하던 이야기가 변하는 순서이기도 하다. 시간여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살펴보자.



1. 인지혁명


인지혁명은 한 마디로 허구를 믿는 능력의 발현이다. 여기서 허구란 실재하지 않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추상적인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돈, 제국, 종교, 국가, 자본주의가 있다. 이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통이나 행복처럼 개인에만 작용하는 주관적인 감각도 아니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실재라는 뜻으로 책에서는 '상호 주관적 현실'이라고 부른다. 상호 주관적 현실은 인간 집단에 질서를 부여한다.


책은 인간이 만물이 영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규모 집단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벌과 개미도 집단생활을 하지만 그들의 집단은 혈연관계로만 채워진다. 반면 인간은 생물학적 유대가 없더라도 유연하게 협력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은 허구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같은 국민이라면, 같은 종교인이라면 친밀감을 느끼고 협력한다. 공통의 이야기는 생물학적 유대를 초월하는 연대를 제공한다.

이런 유연한 협력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성으로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인간이 지능이 있어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기존의 설명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도 지능을 지니고 있고, 또한 지능을 지닌 인간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규모 협력과 협력의 씨앗이 되는 이야기. 이것을 바탕으로 사피엔스는 지구의 정복자로 우뚝 올라섰다.


이야기=허구=신화=질서


허구, 상호 주관적 현실, 신화, 이야기, 상상 속 질서. 표현은 다르지만 책에서 모두 비슷한 의미로 쓰이며, 인간 집단에 부여된 질서의 본질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점은 진실이 아니라 허구를 믿는다는 점이다. 진실과 허구가 있다면 당연히 진실이 더 매력적인 선택지일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진실이 아닌 허구에 눈을 떴다. 대규모 집단이 응집하는 데 있어서 허구의 구심력이 더 강력했다. 중세 1000년간 인류는 신이 내린 질서대로 움직였다는 점을 살펴보면 허구가 어떻게 인간사에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도 일종의 종교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자본주의는 현재 우리 사회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룰에 맞게 행동한다. 이야기는 소리 소문 없이 우리 뇌에 흘러들어 사고방식을 제한한다.


인지혁명은 인류가 유전적 한계를 넘어서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지금껏 모든 생명체는 유전적 혁명에 변화를 의존했다. 생활사가 바뀌려면 유전자 염기서열이 변해야만 했다. 하지만 유전자의 변화는 매우 느리고 불규칙적이다. 원시 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 십만 년간 유지된 이유가 그것이다. 250만 년 전 인류가 탄생하고 2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까지 인류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인간은 유전자 혁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문화만 바뀌면 된다. 자연선택의 도움 없이 집단의 변화를 일구어 낼 수 있다. 현대인을 보라.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가. 때로는 유전적 본능에 항거하며 문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비건은 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칼로리 높은 음식에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은 오랜 시간 수렵채집을 하며 유전자에 각인된 속성이다. 하지만 동물 사랑, 환경 보전을 위하여 기꺼이 채식주의자가 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은 유일하게 유전자의 폭력에 항거할 수 있는 존재다." 하라리가 지적한 인류의 새로운 변화 방식과 궤를 같이 하는 대목이다. 자연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은 빠르게 변화 중이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되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골동품 상점에 진열된다. 


질서의 역사


고대 이집트는 파라오라는 절대 권력이 부여한 질서를 따랐다. 파라오가 신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이집트인은 없었다. 오히려 파라오 없는 세상이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파라오라는 질서는 이집트를 강력히 지배했다. 이집트에 파라오가 있었다면 고대 중국에는 천자가 있었다. 하늘의 자식이라는 의미의 천자는 신의 대리인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절대권력은 일반인과 다르다는 신화를 만들어 백성을 다스렸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현대인이 볼 때 미개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로서 가장 효과적인 정치 방법이었다. 그 덕분에 원시적인 기술만으로 큰 영토를 질서 있게 다스릴 수 있었다. 


세시대 질서는 유일신의 말씀었다. 왕도 성경을 따라야 했다. 회는 곳곳에 세워졌고 질서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사람들은 제국의 화려한 생활은 잊고 금욕적으로 생활했다. 사람들의 유전자 코드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행동 양식은 크게 변하였다. 신본주의라는 질서 속에서 인간은 세속적 욕망보다 내세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 기꺼이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고 목숨을 바쳤다. 


근대가 시작되고 신본주의는 인본주의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한 과학은 신을 저변으로 밀어냈고 그 자리를 인간으로 채웠다. 신의 목소리보다 내면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류는 깨달았다. 거사를 치르기 전 교회에 들러 사제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고 조용한 침실에 앉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근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호모 데우스> 편에서 다시 나누도록 하자.


인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파라오 시대가 기독교 시대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무지하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더 발전한 가까운 미래에 현재를 돌이켜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인류는 늘 질서를 필요로 하고, 새로운 기술은 질서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야기의 모습이 바뀔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야기를 흡수하고 공유한다. 이야기 속에서 협력하고 발전한다. 이런 '이야기'를 창조하게 된 사건이 바로 인지혁명이다. 


인지혁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는 대규모 유연한 협력을 이끈다.


인지혁명의 내용은 책의 후반에서도 후속작 <호모 데우스>, <넥서스>에서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가장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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