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무엇을 중심으로 흘러갈까?
이 질문은 유발 하라리의 여러 저서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다. 역사를 조망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전쟁, 물질, 권력구조, 계급.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중 '이야기'를 중심으로 역사를 조망한다. 인류의 기원부터 성장 그리고 곧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종말까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야기가 인류사를 이끌었다는 주장은 다소 엉뚱해 보인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유발 하라리 책의 매력은 '그럴듯함'이다. 처음에는 터무니없게 들리는 내용이 책을 읽어갈수록 사람을 혹하게 만든다. 도발적이지만 그럴싸한 내용을 담은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는 많은 독자들을 현혹시켰고, 그를 전 세계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들었다. <사피엔스>에 이어 출판된 <호모 데우스>, <넥서스> 모두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호모 데우스>에 등장하는 역사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역사를 필연적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우연적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한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모든 사건들이 현재 상황을 위해 짜인 각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시점으로 되돌아가보면 지금 같은 미래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우연한 선택이 모여 우리를 지금으로 이끌었다. 역사를 현재를 위한 원인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인류를 짜인 각본대로 연기하는 꼭두각시로 전락시킨다.
역사를 변화의 연속으로 설명하는 하라리는 미래도 현인류의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의 존재가 등장한 지금 인류의 선택은 여느 때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선택이 인류를 종말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잘못된 선택이 이끌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며 대수롭지 않게 인공지능을 대하는 정치인, 기술자, 현대인들에게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을 경고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도래할 미래에 어떤 '이야기'를 부여할지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는 대규모 집단에 질서를 부여한다. 고대왕국부터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늘 질서를 부여하는 지배적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때로는 제국이었고 언제는 종교였으며 또 다른 때에는 돈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여러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며 윤리 규범으로 작용한다. 판사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고, 해야 할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을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부여된 질서는 인간이 대규모 집단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유연하게 협력하며 대규모 집단을 꾸린 인류는 경쟁자를 몰아내고 지구의 정복자로 우뚝 섰다. 그들이 가는 곳은 파괴되기 일쑤였다. 대형 포유류는 멸종했고 지구 생태계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멈추지 않는다.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근대의 정신'은 이제 인류를 신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컴퓨터,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같은 신기술은 인간을 초인간으로 진화시킬 힘도 인간을 분열시킬 힘도 가지고 있다. 역사를 훑어보며 미래에 벌어질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부여할지 생각해 보도록 자극하는 것이 이 책의 함의다.
유발 하라리 유니버스 독서법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넥서스>는 독립된 책이지만 시리즈물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면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앞선 책의 내용이 후속 책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을 때 책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추가로 이 책들을 더 깊게 음미하고 싶은 예비 독자들을 위해 추천하는 독서법이 있다. 먼저, 모든 내용에 집중하지 않길 바란다. 이미 다들 알겠지만 세 권 모두 두께가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이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이유도 압도적인 책의 두께 때문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책의 구성은 대부분 두괄식이다. 글의 초반에 주제가 나오고, 그것을 증명하는 실험에 대한 설명이 뒤를 잇는 식이다. 주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집중하고, 실험 내용은 가벼이 읽어야 지치지 않고 두꺼운 책을 완독 할 수 있다. 강약조절이 필요하다.
책을 읽기 전 다른 사람의 감상평을 먼저 찾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문학처럼 반전이 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알고 보아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결과를 알고 보기를 더 권한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글 속에서 길을 잃는다. 저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글자만 읽기 급급한 상황에 처한다. 그럴 때면 앞이 보이지 않게 빽빽하게 솟은 갈대밭을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전진하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의 감상평을 통해 글의 골자를 미리 파악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갈대밭을 지날 수 있다.
이 글은 빽빽한 갈대밭이 두려워 아직 시도하지 못한 예비 독자, 갈대밭을 헤매다 주저앉은 독자, 갈대밭을 간신히 건넜지만 왠지 마음이 공허한 독자를 위해 쓰였다. 이 글이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을 읽는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책 두께만큼이나 힘든 여정이 될 수도 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유발 하라리가 바라보는 인류사를 함께 탐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