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는 농업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표현한다. 많은 이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농업이 등장한 덕분에 인류는 고된 수렵채집 생활을 마쳤다고 학창시절 배웠기 때문이다. 농업으로 정주하게 되었고, 마을과 국가가 등장했으니 문명은 농업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표현하는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비판을 잠시 접어두고 하라리의 말을 들어보자. 설득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역사상 인류를 가장 괴롭힌 요인은 크게 3가지다. 기근, 역병, 전쟁. 지금은 얼추 해결되었지만 과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기근, 역병, 전쟁은 때죽음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었다. 국민의 10% 이상이 한 순간에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기근, 역병, 전쟁의 배후에는 농업이 있다는 점을 듣고도 농업을 칭송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 최대의 사기극
농업은 매우 기후 의존적이다. 양질의 비료가 개발되기 전까지 농업의 생산성은 전적으로 하늘에 달려 있었다. 제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배를 곯아야 했다. 심한 경우 때죽음으로 이어졌다. 수렵 채집 시기에는 이주를 통해 기후의 폭력에 항거했다. 하지만 농업은 기우제를 지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농업은 기후 의존적인 동시에 지리 의존적이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지리가 현대 문명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 지 잘 설명되어 있다. <사피엔스>에서도 그 내용을 인용을 했는데, 유라시아는 가로로 긴 지형과 가축화와 농작화하기 좋은 생명체가 많아 일찍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는 세로로 길고 가축화할 대형 포유도 없어 문명 발달이 늦었다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현대 사회의 불균형은 농업 사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농사를 지으려면 노동력이 필요하다. 수렵 채집 시기보다 많은 인원이 집단을 꾸릴 필요가 있었다. 자식도 더 많이 낳고, 여러 부족이 힘을 합쳤다. 동물까지 불러와 농사를 지었다. 인간은 좁은 지역에 밀집하여 생활했고, 가축의 분뇨는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이따금씩 발생한 역병은 온 마을을 덮쳤고 집단 감염을 일으켰다. 중세의 흑사병을 살펴보면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역병이 얼마나 인간에게 치명적이었을지 알 수 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 등을 굽힌 상태로 이뤄지는 고된 노동으로 관절염과 디스크도 발생했다. 책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며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라고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전쟁도 농업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약탈이다. 농업이 발전하자 잉여생산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곡식은 고기와 달리 빠르게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은 곶간을 만들어 그곳에 수확물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곶간이 텅텅 비면 다른 마을 곶간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생각이 행동으로 옮기면 전쟁이 일어난다.
잉여 생산물은 다양한 직업을 출현시켰다. 공동체가 커지자 모두가 농사에 종사하지 않아도 생산물이 어느정도 확보가 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농사가 아닌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제사장, 전사, 상인이 이렇게 등장했다. 인류의 생활사는 더욱 다양해졌고 그에 맞게 사고의 폭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넥서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며 '정보 네트워크가 다양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정보 네트워크의 다양성이 인류사에 왜 중요한지는 <넥서스>편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농업 계약
지금까지 내용은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책에서도 들어봤을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농업계약'으로 풀이되는 현상은 <사피엔스>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하라리는 농업으로 인해 수렵 채집때와 달라진 집단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수렵 채집 시기에 집단은 무리가 작았고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했다. 하지만 농업은 노동을 대신할 가축이 필요했고 동물을 인간처럼 대접할 수 없었다. 애니미즘 사상은 농업사회에 어울리지 않았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했다. 신이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지금 사회에 딱들어맞는 질서를 인간에게 내려준다.
신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설파했다. 인간은 영혼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고귀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동물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래도 괜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 계약에 대한 사례로 성경을 든다. 성경에서 동물과 인간이 대화하는 장면은 에덴 동산에서 뱀과 이브가 나눈 대화가 유일하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 후로 동물과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은 전혀 연출되지 않는다. 당시 인류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가 성경에 녹아 들었다는 것이 하라리의 생각이다.
2장에서는 인류사에 가장 큰 격변인 농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좋게만 생각했던 농업이 실상 그렇지 않다는 점과 농업 계약에 대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런 신선한 충격이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