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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책방 Dec 05. 2024

<사피엔스> 대신 읽어드립니다: 과학혁명

무지의 혁명

무지의 인정


역사상 가장 격변의 시기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학자들이 16세기를 꼽는다. 16세기 스페인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신항로를 개척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이 벌어졌으며, 프랑스에서는 데카르트가 합리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펼쳤다. 신본주의라는 질서에 금이 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신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신은 말 그대로 완전하고 전지전능하기에 신의 말씀이 담긴 성경은 모든 지식이 담고 있다고 여겨졌다. 성경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현상도 성경을 잘만 해석하면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중세 사람들은 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도에서도 그런 사고가 엿보인다. 근대 이전까지 지도에는 빈 공간이 없었다. 잘 알려진 유라시아 대륙만 그려 넣거나 상상의 대륙으로 빈 공간을 채웠다. 빈 공간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영토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뜻한다. 빈 공간이 없던 것으로 보아 본인들이 모르는 대륙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조차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학의 시작은 무지의 인정이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맥락에서 책은 과학혁명을 '무지의 인정'이라고 표현한다. 신문물과 새로운 지식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신에게서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성장의 등장


우리는 무한 성장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규모는 날마다 커지고, 과학과 기술은 발전한다. 우리에게 성장은 은 디폴트 값이고 정체가 더 낯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개념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불과 500년 남짓이다. 그전까지 수 천년 간 인류는 성장을 믿지 않았다. 


생태계를 떠올려 보자. 초원에서 사자와 하이에나가 먹이를 두고 경쟁한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먹이의 양은 정해져 있다. 사자가 많이 얻으면 하이에나는 그만큼 굶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연에서 늘 '파이 나눠먹기'식의 경쟁만 존재한다. 너도 나도 같이 배부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배부르려면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하지만 과학은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파이를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것이다. 남의 땅을 빼앗지 않아도 발전한 비료를 사용하면 더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나도 배부르면서 너도 배부를 수 있었다.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와 신용을 창조했고 새로운 질서를 세웠다.


자본주의, 제국 그리고 과학


신용의 등장은 경제 체계에 변화를 일으켰다. 근대 이전 경제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었고, 신용이 적었기 때문에 성장은 느렸다. 성장이 느리니 미래에 대한 신뢰는 더 사라졌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신용은 많아졌고 사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빠른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더 높였다. 경제 성장에 선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경제 체계의 변화는 과학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투자가 필요하다.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믿고 후원해 줘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 과학이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제1규율은 다음과 같다.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이다.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과학에 더 많은 돈이 투자될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다시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자본주의와 과학은 상호 보완적인 모습을 보인다. 


과학은 제국과도 관련이 깊다. 제국주의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새로운 지식이 필요했다. 새로운 지리와 식생, 기후에 적응해야 했다. 발전된 과학은 제국이 영토를 넓히는 도움을 주었다. 과학은 홀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제국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산업혁명


산업혁명 이전 에너지의 전환은 생체 내에서만 이뤄졌다.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전환했고, 식물을 먹는 방식으로 동물은 에너지를 얻었다. 동물은 화학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었다. 이 경로가 노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에 유일했다. 증기기관은 생명체를 대신하여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이고, 그렇게 생긴 증기는 기계를 구동했다. 기계는 인간을 대신하여 공장에 배치되었다. 기계의 등장으로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증대하였다. 특히 농업의 생산성을 높였고 농부의 수는 줄었다. 일자리를 잃은 농부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했다. 


기계는 시계를 등장시켰다. 농사는 태양의 시간을 따랐지만 공장은 정밀한 시간이 필요했다. 공장은 정밀한 시간을 따르기 시작했고 그러자 병원, 학교, 대중교통도 그 시간을 따르게 되었다. 인간의 생활에 전반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생산성이 증대되자 쌓이는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재고가 쌓이는 것을 방지하려면 소비가 증진되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소비 지상주의라는 풍토가 생겼다. 자본주의는 투자를 소비 지상주의는 구매를 촉구했다.


성장의 종착지


자본주의는 성장을 최고의 선으로 삼는다. 자본주의는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윤리적으로 어긋나더라도 호의를 베푼다. 노예무역, 노동 갈취는 자본주의가 부여하는 질서에서 용납되었다. 심지어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방직기 기계 수리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아이들까지 착취당했다. 자본주의의 질서를 따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하여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성장의 끝은 어디일까? 인간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을 멈출까? 지금으로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류는 나선형을 그리며 무한대로 뻗어가는 중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최종 종착지를 3가지로 꼽았다.


불멸, 행복, 신성


생명공학과 의료분야에서 진행 중인 연구의 대부분은 수명 연장과 관련이 있다. 당장은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할 목적이지만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일의 사치품은 오늘의 필수품이 되기 마련이다. 세계 대전 이후 얼굴의 흉터를 제거하기 위해 등장한 성형수술은 현재 미용 목적으로 변질됐다. 비아그라도 마찬가지다. 치료 목적보다는 기능 강화에 초점을 둔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은 불멸에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라고 하라리는 내다봤다.


행복은 인간의 최대 선으로 여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목표를 '행복 추구'라고 하였다. 행복을 추구하려면 먼저 행복이 무엇인지 정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자들이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했지만 하나의 정의로 뜻이 모이진 않았다. '행복이 무엇이다'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는 는 '기대와 현실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불행하고 기대와 현실이 일치할 때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목표를 달성하면 더 높은 기대를 갖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는 어렵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행복을 주관적인 내면의 움직임으로 본다면 불가능하지만, 뇌에서 벌어지는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바라본다면 말이 달라진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란 호르몬과 전기적 신호를 뜻한다. 인간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다. 우울증인 환자가 코르티솔 알약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호르몬이 인간의 감정을 충분히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약 외에도 전기신호를 내뿜는 헬멧을 통해 인간에게 행복 자극을 줄 수도 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 약물과 전기 헬멧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것이다. 영원한 행복은 인간을 현혹시키기에 매우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불멸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은 결국 신이 되려고 한다며 책은 마무리된다. 그리스어로 신은 '데우스'이다. 이 단어를 차용하여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뒤를 이을 초인류를 '호모 데우스'라고 명명하였다. 호모 데우스는 자연선택이 아닌 지적설계라는 새로운 질서를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사피엔스의 결말

개인적으로 <사피엔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초인류의 등장이 터무니없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님 그때 겪을 혼란이 걱정돼서였을까. 지금 내가 따르고 있는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피엔스>를 읽는 내내 지식의 향연에 푹 빠져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책을 덮고 느꼈던 찜찜함의 근원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여행을 끝낸 당혹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빅히스토리를 이토록 흥미롭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산재되어 있던 역사적 사실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후속편인 <호모 데우스>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던 나는 책을 빌리기 위해 곧장 도서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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