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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후배의 퇴사

꿈을 위해 떠나는 퇴사를 응원하다

by 조용희

봄기운이 느껴지던 4월 어느 목요일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 미팅을 한 뒤, 나의 일은 거의 끝이 나고 퇴근하려던 차에 나의 첫 부사수였던 후배가 아직 할게 많이 남아서 못 간다고 했다. 집이 같은 방향이었기에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업무가 바뀐 터라 큰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일을 함께하고 조금 늦게 퇴근했다. 늘 그랬듯 “요즘 많이 힘들죠”라는 안부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출발한 뒤가 아닌 집에 도착하기 5분도 채 되지 않아 “선배님께 드릴 말이 있어요”라고 운을 뗐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휴가 얘기냐고 물었으나 아니라고 했는데, 정말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입사하고부터 캐나다의 무역 관련 대학원에 2년째 지원해오고 있었어요..


지원하고 계속 떨어졌지만 이번에 합격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세시까지 정해야 하는데 마음을 이미 정했단다. 해외 대학원 얘기에 적잖이 당황했고 그 이후에 답을 알 것만 같았다. 나였으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곧 간다는 것. 그렇다. 예상 적중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한 퇴사는 위의 과장님, 그리고 파트리더인 차장님께도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전 사수였던 나에게도 얘기를 미리 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었다고 했는데 정말 고마웠다. 중대한 이야기를 나름 미리 얘기해주어서.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들었으면 서운할 뻔했다.


그 당시 팀장님께 얘기드리는 것이 남았고, 나는 좋은 기횐데 당연히 대학원으로 가는 게 맞다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정확하게 어찌 얘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럽다, 나 같아도 갔을 거다, 앞으로 그럼 일은 누가 또 대신하게 될지 궁금하다 등 아무 말 대잔치를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본인의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후회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저런 의견이 담긴 얘기를 더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 밤낮없이 고민 많이 했을 거란 것을 안다.


곧바로 도착할 때가 되어 긴 얘기들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팀장님께 말씀드리면 나에게도 어떻게 얘기되었는지 전해 달라고 하고 보냈다.


주차하고 집으로 가면서 멍했다.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결국 퇴사라는 걸 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곧 '이별'을 의미했다. 나의 첫 부사수이자 후배가 떠나기 전에 선배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 잘해준 것은 없는 듯하고 한편으로는 못되게 까지는 아니었어도 모진 말을 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밥도 술도 따로 한번 사준적이 없었다는 것도 크게 미안했다.


물론 회사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깐 사수 부사수 시절에는 일도 함께하고 퇴근도 같이하며 일하면서 힘들었던 부분들은 함께 공유하고 얘기도 많이 했다. 사수 부사수 사이에 좋은 사이는 잘 없다고 하지만 우린 그래도 좋은 편에 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배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캐나다에 유학 간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해외를 간다는 것, 본인이 하고 싶어 하고 이루고 싶어 했던 것을 위해 떠난다는 것인데 내심 크게 부러웠다. 대학생 때 영국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할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린 기억 때문이었을까.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다고 했다면 느낌이 덜했을 텐데 해외를 간다는 것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결정에 있어서 어느 누구라도 판단하고 훈수 두는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선물.jpg 후배에게 준 선물 (드로잉 굿즈)


후배가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밥을 사주거나 술을 사주는 것은 당연했기에 그건 제쳐두고,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것과 흔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나의 드로잉 굿즈가 떠올랐다. 내가 그린 펜 드로잉이 담긴 엽서, 손거울, 스티커, 책갈피, 액자 소품까지 정성껏 포장하고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에 담아 선물했다.


무척이나 선물을 좋아해 줬던 모습에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후배가 가기 전에 팀원 사람들에게 모두 정성껏 편지와 선물을 주고 떠난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별도로 소중한 책도 선물해주었는데 너무 고마웠다. 조금은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선물 사진.jpg 후배의 선물


퇴사를 하고 난 뒤, 가끔씩 안부 묻는 연락을 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캐나다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계획들이 꼬였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제도 이번 글 올리는 것 때문에 사전에 허락을 구하고자 연락하다 근황도 얘기하고 내가 선물해줬던 드로잉 액자를 기념품 보관하는 곳에 잘 있다는 사진도 함께 보내주었다.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끝으로 서로 무엇을 하든 응원한다는 훈훈한 말에 힘도 얻었다.


머지않아 다시 만나서 얼굴을 보며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다.

로빈씨 사진.jpg 후배가 보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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