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공평하기에 아름답다.
“삶은 공평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룰 수 없는 소망이다. 삶은 공평하지 않으며 세상에는 부조리가 널려 있다.” -유시민-
삶은 공평하지 않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
라는 사실은 일찍이 배웠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며 받아들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알았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어쩌면 내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긴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내 삶도 그리 공평하지 않은 듯하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될 것에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들에 시간을 보냈고, 세상이 말하는 나쁜 것들에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았다. (사실 크게 흥미도 없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노력했으니, 더욱 큰 보상이 내게 올 거야’ 유치하지만 세상을 믿었다. 적어도 내 삶은 공평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주변엔 이미 깨우친 듯 일명 ‘마이웨이’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이 바라는 모습보단 지금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는 사람 (물론 그것도 과하면 별로다.) 옛날엔 한심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들은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깐 말이다.
다소, 회의적인 글이라 생각할까 봐 미리 말하자면 난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우울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다.
추석이면 할아버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직업도 직장도 없는 나에게 그 나이 많은 꼰대는…
“ 그렇게 살면 안 돼 ”
라는 말만 늘어놓을 줄 알았다. (각오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게 맞았다.
적어도 내 삶은 그렇게 취급되는 게 맞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뜻 밖에 말은
“네가 우리 중에 제일 미래를 사는구나”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야지”
내색하지 않았지만 슬펐다. 삶의 끝자락을 매듭짓는 그의 말엔 무게가 있다. 가벼운 말이 더욱 깊이가 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불공평이 내 삶에 늘어져버렸다. 오랜 시간 인생을 살아온 그는 이미 안다.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 것임을
할아버지는 농부다. 1년을 꼬박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일해야 한다. 더운 여름 뙤약볕 아래 옷을 적셔가며 노력을 심는 직업이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면 너무 다행일 텐데, 농사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10번의 노력도 1번의 실수로 망가지는 것이고, 제 아무리 잘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농부의 삶이다.
그는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님을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농부는 그 해 농사가 망했다고 쓰러지지 않는다. 이듬해의 풍년을 위해 또다시 희망을 심는다. 물론 노력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또 심는다. 그게 농부다.
나는 이제야 삶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삶이 공평했다면 그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말하기는 웃기지만 할아버지는 잘 산다. 땅값이 올랐다. 그에게 삶은 불공평했지만 계속된 끊임없는 불공평속에 또 뜻밖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말 그대로 삶이 불공평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12시간은 참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멋진 일을 하며 많은 돈을 벌 테고, 또 누구는 힘든 일을 하지만 최저시급도 보장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지속하는 이유는 인생이 불공평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언젠간 뜻밖의 불공평이 찾아오길 기다리며 말이다.
할아버지의 인생은 누구보다 깊고 넓다. 그리고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 삶이 적절히 무르익을 즈음 젊은 누군가에게
“삶은 불공평해,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말이다.
“삶은 불공평해,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