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역할을 하려 합니다.
“엄마, 나 요리사 관뒀어요.”
“그래 잘했어.”
아들을 한 번도 기죽이지 않는 분이라 그 말을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그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요리사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일찍 진로를 결정해 고등학교부터 조리교육을 꽤 체계적으로 받은 모범생이다. 지인들에게 나는 당연히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했고 이력의 대부분이 요리와 관련 있으니 그 생각이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기대에 산다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요리사로 취직했다.
첫 해는 무난히 넘어갔다. 재밌었다. 배우는 것도 많았고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게 되어 걱정 없이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는 딴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문제는 코로나 때문에 발생했다.
코로나 팬더믹, 최고 경고 등급의 전염병인 만큼 세상은 급격한 변화에 몸살을 앓았다. 음식점은 10시 이후 영업이 금지됐고 2인 이상 손님이 올 수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물론 난 경영진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이 무관함이 퇴사로 이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요리사들은 오랜 근무시간으로 항상 지쳐있다. 심지어 내가 있던 레스토랑은 주말까지 쉴 수 있는 직장이었음에도 직원들의 피로도는 누적되어있었다. 최근엔 많은 곳에서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튼 갑작스러운 팬더믹 상황에 레스토랑은 비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무관했기 때문이다. 요리사인 나로서는 근무시간이 단축되어 좋았고 손님이 줄어 피로도가 줄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꼭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참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연일 뉴스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슈로 괴로워하는 외식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늦게까지 영업을 하지 못해 망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또 장기화가 예상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자주 매스컴에 노출됐다. 하지만 정작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외식업에 몸 담고 있는 요리사,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마음이 편해도 될까?
나는 진정 외식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가? 누구든 그 답을 내려줬으면 했다. 어려운 외식업계의 현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일이 줄어 좋아하는 내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뭐야?
한참 직장을 구할 때 많이 듣던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인지 아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인지 모르지만 난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게 있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은 있었다.
‘필요한 사람이 되자’
필요한 사람, 외식업에서의 필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면 될까? 이런 생각마저도 너무 거만한 생각일까? 나는 과연 필요한 사람일까?
그렇게 나는 퇴사했다.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일이 아닌 정말 내가 가치 있게 일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이제 나의 열두 시간을 필요한 일에 사용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