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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 창업한 오너 셰프 이야기

문래동 와인바 ‘형제조각’ 인터뷰

by 김대영
여기 ..가 음식점 맞아?


서울 문래동 창작촌에 있는 작은 와인바 ‘ 형제조각’의 외관을 보고 음식점이라 떠 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래 창작촌에 위치한 ‘형제조각’

“셰프님, 왜? 가게 이름이 형제조각이에요?”

“아, 원래 있던 공업사 간판을 그대로 둔 것입니다.”


무척이나 담담하게 대답하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세를 고쳐 잡고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저희 가게가 들어오기 전 형제조각은 30년 된 공업사였어요. 그곳에 가게를 보러 갔을 때 그 간판이 너무 이뻐서 그냥 그 간판을 그대로 쓰기로 했죠. 예쁘게 디자인해서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세월만이 만들 수 있는 간판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만들어낸 간판, 낡은 것이기에 버리는 것이 아닌, 낡은 그대로를 존중하는 그의 생각에 많은 생각이 스친다.


‘늙음’이라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큰 고리의 한 부분인 것을 우리는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닌 “지금 까지 수고했으니 이제는 그 자리에만 있어도 좋은 완성적 존재”로서의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잘 익은 간판을 지나 ‘형제조각’ 에 입구에 들어서면 외관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형제조각’ 내부

은은한 조명과 우아한 음악소리, 길게 뻗은 바 좌석은 단골손님을 맞이하는 듯 편안한 감정을 만들어준다.


메뉴가 이게 다 에요?

형제조각은 이태리 음식을 취급한다. 정확히는 파스타가 주력이다. 메뉴판을 확인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단출한 메뉴판이 의아하다.


“여기 메뉴가 이게 다예요? “


“네, 제가 할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네요. 정확히는 제가 집중해서 책임질 수 있는 메뉴의 가짓수가 딱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척 충분합니다.”


“충분하다고요?”


경쟁이 치열한 국내 외식산업에서 메뉴의 차별화와 가짓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충분하다니? 의아했다.


“네, 그냥 충분해요. 저는 그냥 ‘제 식당’을 하는 거예요. 남의 눈높이와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속도로 알맞게 저만의 식당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가진 정도에서 욕심을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메뉴에 집중하니깐 충분합니다. 저는 완성된 셰프이기 때문에 창업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메뉴보단 할 수 있는 메뉴에 집중하는 것이죠.”


부족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과정이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저는 항상 제가 기준이에요.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절대 손님에게 내놓지 않죠. 음식을 만들고 항상 묻습니다. ‘나 라면 이 가격에 먹겠어?’ 저 조차도 납득시킬 수 없는 메뉴를 손님에게 납득시키려는 것은 욕심이죠. “


곧이어 음식이 나온다.

‘봉골레 파스타’다.

형제조각 ‘봉골레파스타’

“ 어? 셰프님 왜 봉골레인데 조개껍데기가 안 들어가 있어요? 보통 다른 곳은 넣어주던데?”


“의미가 없으니까요. 먹기 불편하잖아요.”

봉골레 파스타에서의 조개껍데기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먼저 파스타를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더불어 좋은 조개를 썼다면 조개를 자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러한 이유는 납득될 수 없었나 보다.


그의 파스타는 그를 닮았다. 겉보기에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신뢰를 선택했기 때문일까? 여간 매력적인 식당이다.


형제조각 ‘양라구 파스타’


곧이어 형제 조각의 시그니처 ‘양라구 파스타’가 나온다.

“양라구? 왜 라구를 양으로 하셨어요? 일반적으로 소고기로 하지 않나요?”


“저는 비록 한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하지만 그 음식 문화의 자체를 전달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라구는 무엇일까 궁금했죠. 보통 이탈리아는 각 지방마다 라구 소스가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있는 음식이에요. 특히 재밌는 것은 사용되는 고기가 야생동물입니다. 멧돼지, 토끼 등 다양한 고기로 라구를 끓이죠. 그런데 왜? 야생동물로 라구를 끓이는 줄 아세요?


“… 아니요? “


“야생동물은 고기 특징상 누린내가 많아요.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 누린내를 잡기 위해 라구라는 조리법을 사용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일부로 다른 고기보다 향이 뚜렷한 양으로 라구를 끓이는 것입니다.”


“ 어쩌면 클래식?일까요?”


“저는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죠. 뭐든 이유를 물어봐요. 왜 이 사람들은 이런 레시피를 사용했고, 스테이크는 꼭 후추를 뿌려야만 하는 것일까? 클래식이라고 꼭 옛것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걷어낼 것은 걷어내고 정말 이유 있는 것들만 남겨놓는 과정이죠.”


이유 있는 것들을 남기고 걷어낼 것은 걷어내는 것이 진짜 클래식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어쩌면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지루한 암기가 아니라 지혜로운 분리가 아닐까? 그 때문일까 그의 음식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어쩌면 본질만 남아있다.


이탈리아 까르보나라

셰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가진 철학이 궁금해졌다.


“ 세프님이 가진 제1의 원칙은 뭐예요?”

“ 음….. 제가 가지고 있는 소신은 있습니다.”


“뭐죠?”


“ 좋은 재료는 비싼 재료가 아니라 신선한 재료다, 원래 자라야 하는 곳에서 원래 먹야하는 것을 먹고 햇살을 쬔 식재료는 다른 맛이 나거든요.”


그는 식재료 이야기에 신이 난 듯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 저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어요. 요리사는 뭐지? 이거 농부가 다하는 음식 아니야? 신선한 식재료를 차근히 접하면서 신선한 식재료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신선한 식재료 앞에 요리사는 그저 도우미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오랜만에 “좋은 요리사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꾸밈이 아닌 그저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셰프를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요리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뭘까요?”

“ 나와 내 주변을 납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죠,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을 납득시키면 손님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조차 납득시킬 수 없다면 손님을 납득시킬 수 없죠.”


형제조각 ‘권용범 셰프’

요 며칠 새 내 머릿속에 납득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나는 누군가를 납득시키고 있는가? 아니, 그전에 나는 나를 납득시키고 있는가?


문래동 창작촌에는 형제 조각이라는 와인바가 있다. 누구나 맛있다고 생각할 절대적 맛집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앞에 손님은 납득시킬 그런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 팟캐스트 ‘어차피, 음식 이야기’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각색해 쓴 글입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51/clips/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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