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끝이 결국 자책인 사람들에게
모처럼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시간이니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길을 막는다.
혹시, 고민 좀 들어주실래요?
바로, 최근 일을 시작한 이사원이었다.
이사원은 나와 나이 때가 비슷한 또래였다. 하지만 지금 직장에 들어온지는 얼마 안 된 신입사원이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풀이 죽어있었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다.
고민의 내용은 이렇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한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자신은 떳떳한데 정말 찰나의 순간, 정말 작은 오해들로 내가 결정되는 것 같다. 상사의 피드백이 너무 아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여기서는 이런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하다.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불과 1년 전 나의 모습이었고 그 모습이 싫었다. 다음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난 그의 다음 생각을 알 것 같았다.
내가 많이 부족한 걸까?
나는 안 되는 걸까?
고민의 끝은 결국 자책이라는 것 말이다.
낯선 실수가 계속되고 날 선 시선은 결국 우리의 자존감을 바닥내버린다.
나도 그랬다. 항상 인정만 받아오던 우물 안 개구리는 사회라는 세상이 눈부셔 앞가림도 못했고 내가 짚은 곳이 바닥인지 벽인지도 모르게 헤롱헤롱 살아갔다.
그래서 난 단단해지려 했다.
냉혹한 사실에 다치고 쓸려 단단한 굳은살을 보고도 지나가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만 믿으며 그 약이 오히려 독이 되진 않을까 의심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말은 불리한 순간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되니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 했다.
약점을 만들고 싶지 않아 잘할 수 있는 것도 중단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직 난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싸움 중이구나 긴장하자, 경계하자 누군가 날 쉽게 보지 않도록 나를 더욱더욱 단단하게 만들자."
그렇게 조금은 단단한 시간들로 내 시간은 채워졌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그 시간들을 이겨냈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었는지, 단단한 마음이 무기가 되었던 것인지 잘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나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야기할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너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야."
"힘들 텐데 고생 많이 했어."
"오늘 맥주 한 잔 할래?"
사실 그 시간들을 이겨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동료들의 공감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했던 것은 분명하다.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동료들을 믿고 조금은 긴장을 풀어보자.
이제 나도 누군가의 공감이 되려 한다. 아직은 서툴고 어색할지라도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자존감 충전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존감이 낮았을 당시 내가 기록했던 글이다.
나에게
시간은 남 같이 나를 봐주지도 않더라
지금의 네가 비록 작아도
보잘것없어도
한 것 없어 보여도
기죽지 말자, 그 시간들이 너를 소중하게 만들 테니
지금 이 이 시간부터는, ‘당당’ 하자.
진정한 가치는 볼 줄 아는 ‘자’의 것이다.
19.08.31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 글을 보고 조금은 편히 잘 수 있길 바라본다.
Photo by Nataliya Vaitkevich from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