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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Jun 22. 2020

새벽 2시 10분, 경보음이 울렸다.

주택 탐구생활 1. 단독주택에 살면 '더' 무서울까?

한참 쿨쿨 자고 있는데 의식 저편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비몽사몽 중에 살짝 눈을 떠서 휴대전화를 켜보니 새벽 2시 10분쯤. 남편이 세콤 아저씨 전화를 받으며 일어난다. '지금 출동 중입니다' 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아... 잘 자고 있는데 웬 세콤... 엄마가 베란다 문을 여셨나?' 하고 있는데, 이번엔 음성 경보가 울려 퍼진다. 


<침입 상태입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눈도 안 뜬 상태에서 듣자마자 '피식' 하고 웃었다. '남편, 침입 상태래. 침입 상태라니... 이건 너무 무서운 표현 아냐?'라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순간, 온몸에 사사삭 소름이 돋았다. 퍼뜩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나 인규 방으로 갔다. 인규는 그 시끄러운 경보음에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아이 방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서도 쉽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심장이 쿵닥거리는 게 머리까지 느껴졌다. 인규를 낳기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속수무책. 두려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더 날카로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비슷한 경험이 딱 한 번 더 있다. 인규가 태어난 지 100일이나 지났을까, 아직 핏덩이 같은 애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빙판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안전한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말 그대로 '패닉'에 빠졌다. 위기 상황일수록 차분하게, 일단 대처 방법부터 이것저것 떠올리는 나였는데... 인규가 포함된 위기 상황에서는 아예 생각이 멈춰버린다. '내'가 아닌 '아이'가 걸린 일이면, 그렇게 되나 보다.  


그러는 사이 세콤 아저씨가 도착해서 남편과 같이 집 주변을 살폈다. 특이점은 없다면서 센서 인근에 있는 나뭇가지를 용의자(!)로 지목해 잘라내고 가셨다. 그렇게 소동은 끝났지만 나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CCTV를 돌려봤다. 그리고는 곧. 진범을 찾아냈다. 


범인은... 눈빛을 남겼다.


 

경보가 울리기 직전, 어둠 속을 지나는 두 개의 불빛... 아닌 눈빛.


고양이였다. 


심지어 누군지도 알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는 의외로 고양이가 별로 없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마당을 유유히 지나가는 통통한 갈색 고양이. 우리 집에서 목격한 유일한 고양이였다. 그 녀석이 새벽 2시 10분쯤 세콤 센서를 건드렸고, 내 '인규 보호 센서'까지 뒤흔들어놓은 거였다.


'아닌 밤중에 세콤 소동'을 겪으면서 '단독주택에 살면 무서울까?'라는 내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됐다. 단독주택에 살아보기 전까지, 단독주택 이사를 망설이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무섭지 않을까'였다. 울타리도, 경비실도 없는 데다 저층이니 각종 침입(?) 범죄에 쉽게 노출되지 않을까 싶었다. 구조가 한눈에 훤한 아파트와 달리 집에 따라 옥탑방도 있고 지하도 있어서 더 무섭지 않을까 싶었다. 직업병이기도 하다. 사건팀 기자를 몇 년 해보면 '빠루' 하나로 문 따위는 쉽게 여는 각종 범죄 사건부터 스파이더맨처럼 2, 3층은 훌쩍 뛰어올라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까지 다양하게 접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범죄가 벌어질 수 있다'는 풍부한 상상력에, 그런 상상력을 부추기는 다양한 종류의 생생한 CCTV 화면을 언제든 떠올리게 된다. 


...음... 직업병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면.... 사실 난 겁이 많다. 아파트 7층에 처음 이사 와서도 첫 해는 아무리 더워도 베란다 문을 꼭 닫고 잤다. 창고로 쓰는 방에서 자그마한 소리라도 들리면 온 몸에 솜털까지 쭈뼜 섰다. 남편이랑 인규랑 집에서 숨바꼭질할 때도 내가 기겁해 소리를 지르거나, 그런 나를 닮은 인규가 무섭다고 울음이 터지고 나면 놀이가 끝났다. 하물며 아파트에서도 이런데, 단독주택에 살면 너무 무서울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단독주택으로 이사 왔더니 '생각보다' 무섭지 않아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이유는 세콤, 두 번째 이유는 동네 분위기였다.


우리는 이사 오기 전 '무서울까 봐' 세콤부터 신청했다. 창문과 출입문은 물론 실내까지 센서를 달고 여기저기 CCTV도 설치했다. (세콤 서비스에 CCTV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잠들기 전 '재택 경비'를 설정해놓으면 움직임이 있을 경우 바로 출동하는 시스템이다. 그 '재택 경비' 설정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한다. 아... 이렇게 믿음직한 친구가 있다니...!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하지만 그 비용과 '내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효용을 생각했을 때 맘에 들었다. (하지만... 정말 적지 않은 돈이므로. 비용과 효용의 값어치는. 언제든 역전이 가능할지도!)   


그다음은 동네 분위기. 우리 집은 단독주택 '단지' 안에 있다. 교외에 멀찍이 동떨어져 있는 곳이 아닌 데다 주변 집이 다 분위기가 비슷한 단독주택들이다. 집집마다 창이 많은데, 그 많은 창으로 옆집 앞집 골목 다 보이니까 서로서로 그냥, 편안하게 사는 느낌이다. 또 집 주변이 워낙 조용하다. 전에 살던 집은 아파트였지만 길 건너에 (맛있는) 닭발집이 있어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용 축구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외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일도 많았는데 지금 사는 동네에는 정말 조용하다. 주민들이 조깅을 하거나, 종종 동네 구경 겸 산책 겸 사람들이 오갈 뿐이다. 


이사 와서 두 달 여. 이런 이유 등으로 '단독주택은 무섭다'에는 일찌감치 X 표를 그어놓았다. 새벽 2시에 '침입 상태입니다'라는 경고를 들은 그 날과 그다음 날까지는, 겁이 난 게 사실이었지만. 진짜 '침입'이 있을까 봐 무섭다기보다 '고양이가 또 세콤 센서를 건드려 경보음에 화들짝 깨면 어쩌지?'가 더 무서운 지점이었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세콤이 있든 없든, 우리 집은 내가 '어서 오세요' 하고 문을 열어놓지 않는 이상, 외부 침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튼튼한 이중창을 외부에서 열 방법이 없다. 더운 여름밤, 테라스 문을 활짝 열고 잘 수 없다는 게 불편하다면 불편한 점이지만. 무서워서 못 살겠다? 이런 생각은 안 든다. 


결국 내가 얼마만큼 겁쟁이(!)인지, 그래서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비용을 들여 어떤 장치를 더 마련하는지(동네 정하기부터- 세콤, CCTV, 이중창 등등 까지)의 문제인 것 같다. 다만. 새벽에 또 <침입 상태입니다>라는 소리는 좀 안 들었으면 싶다. 고양이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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