뀨가 태어난 뒤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다. 어릴 때 남자애들이 '장난으로' 잠자리를 잡아다 '장난으로' 날개 절반씩을 잡아 찢어 죽이는 걸 본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나가던 개미를 발로 밟으며 낄낄대는 모습에 '남자아이들=잔인함' 이란 인식이 있었다. 모든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지 않고, 여자아이라고 안 그러란 법이 없을진대. 내가 겪은 게 그랬다. 그래서 '남자아이' 뀨에게 작든 크든 움직이든 가만히 있든- 살아있는 모든 걸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무언가를 죽이며 깔깔대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뀨가 태어난 아파트 7층에는 벌레가 많지 않았다. 가끔 뭔가 나타나면 때려잡는 대신, 살며시 잡아다 창밖에 놔줬다. 모기는 좀 고민이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면서 '왜 모기는 때려잡아도 되는지' 설명해주기가 어려웠다. 모기는 사람 피를 빨아먹고, 한밤중 자고 있는 우리 가족을 '에-엥!' 하고 지나가며 괴롭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잡는 거야'라며 '예외'임을 분명히 했다. 다행히 뀨도 놀이터에서 개미가 보이면 가만히 지켜보거나 조심히 지나가 줬다. (교육의 결과인지, 천성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더 자연 친화적으로, 더 나무가 많은 곳으로, 더 녹색 녹색 한 곳으로, 더 흙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어렵게 어렵게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벌레가 더 많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
벌레탐험대 동네 탐사. 관찰통에 잠시 담아서 본 다음 다시 놔준다.
여름을 낀 단독주택 생활 약 5개월 차. 그 5개월여 만에 뀨는 벌레를 때려잡은 뒤 '엄마! 내가 모기 한 마리 잡았어!!!'라고 외치고, 나와 남편은 '아디다스야?'라고 물어본다. 뀨가 씨익 웃으면 축제 분위기. 독한 아디다스 모기(=흰줄숲모기)를 집 안에서 잡는 사람은 그 날의 영웅이 됐다. 30대 후반인 나와 남편보다 동체시력이 월등한 6살 뀨는 주로 '작은 날벌레' 담당이다. 초파리의 부엌 습격에 성격이 나빠진 우리 부부는 작은 날벌레를 때려잡는 인규를 처음에는 묵인하다 곧 용인했고 이제 사실상 장려 중이다. 나는 거미를 대하는 태도가 (미안하지만) 상당히 바뀌었다. 이제 어지간한 사이즈는 그냥... 휴지를 조금 두텁게 준비해 먼지 닦아내듯 제거한다. 아파트에 살 때 '거미는 놔준다'가 우리 집 불문율이었다면, 이제 '거미 잡는 건 서로 모른 체 해준다'가 불문율이 됐다.
단독주택 이사를 망설여왔던 수많은 이유 중 '벌레'는 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녹색을 사랑한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다, 나무를 좋아한다- 그래도 벌레는 싫은걸 어째. 나는 특히 다지류와 거미류에 무척 취약하다. 친정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몸통이 두꺼운 거미가 나타날 때마다 내 삶이 불행하다고 비관했다. 바퀴벌레를 직접 해치워본 경험도 손에 꼽혔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엄마!!!'를 불렀다.) 모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남편은 모기가 많을까 봐 걱정했다. 모기 때문에 여름 내 고생하고, 대형 거미류를 상대할 자신이 없으면 단독주택은 함부로 이사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 단독주택 이사를 결심하고 비어 있던 집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안방 화장실에서 죽은 바퀴벌레를 보고 내가 큰 실수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4월 말, 단독주택에 이사 오고 나서 처음으로 쿠팡맨이 가져다준 제품은 바퀴벌레 제거제였다. 우리가 이사를 들어오기 전 집이 잠깐 비었었는데 그 사이 바퀴벌레가 생겼던 거 같다. 곳곳에 먹는 바퀴벌레 약을 설치하고 거품형?이라는 최신식 약품을 동선 곳곳에 뿌렸다. 그러고도 한동안 종종 바퀴벌레가 목격돼 우울한 마음으로 밤마다 '세스코 가격'을 검색했는데. 다행히 전문가 도움 없이 바퀴벌레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집 관리를 빡세게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집에 사람이 살면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끔찍한 일(바퀴벌레 득실, 벌레 가득)은 벌어지지 않는 듯싶다. 특히 방충망 관리만 잘해도 큰 화는 피할 수 있다. 방충망 하단 물구멍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걸 목격한 뒤 인터넷을 뒤졌더니 '물구멍 방충망' 이란 작은 스티커형 제품이 있었다. 여기저기 붙여뒀더니 확실히 집 안에 들어오는 벌레가 줄었다. 집구석구석 거미가 자리 잡았지만 거미인지 먼지인지 헷갈릴 정도 사이즈만 집 안으로 들어온다. 뭐. 이 정도면 됐다.
다이소든 쿠팡이든 '물구멍 방충망'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더 오래된 집이라면 아예 단독에 들어가기 전 방충망 전문 업체를 통해 싹 정비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대책은 있다!
우리 집이 이중창이고, 방충망이 어느 정도 잘 돼 있다는 걸 전제하고. 뀨도 우리도 지난 5개월 동안 적절한 선을 잡아온 느낌이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뀨가 작은 날벌레를 때려잡게 됐지만,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벌레를 죽이는 잔인한 아이가 되지는 않았다. 뀨는 여전히 개미를 보면 가만히 관찰하거나 먹을 것을 놔주고. 잠자리를 잡으면 잠시 관찰했다 놔주고, 무당벌레가 있으면 귀엽다면서 꼭 엄마를 불러 보여준다. 우리는 주변에 나무가 많은 단독주택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온 벌레들을 없애고 있지만 여전히 흙이 좋고 녹색 녹색이 좋고 생명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제 가을. 모기도 자취를 감춰가고 뀨를 기겁하게 만든 귀뚜라미도 슬슬 안 보이니 벌레 시즌은 끝난 듯.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