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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Aug 31. 2020

단독주택 여름은 더 진하다.

장마와 코로나로 버무린 올해 여름이여.

단독주택 여름은 진녹색이다. 아파트에서 살 때보다 계절이 좀 더 '진하다'. 아파트에서는 암막 커튼을 거두기 전까지 바깥 상황을 좀처럼 알기 힘들었지만. 여기서는 뭐, 실시간이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에 나가 아스팔트 색이 까맣게 변하는지, 사람들이 우산을 쓰는지 안 쓰는지 봐야 '비가 오는구나 우산 챙겨야지' 했는데. 여기는 눈 뜨기도 전부터 후드득 후두둑 빗방울이 나뭇잎을 치는 소리, 창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흙냄새까지- 온갖 감각으로 알 수 있다. (...알 수밖에 없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녹색녹색 한 우리 집에 이름을 붙인다면 '여름 주택'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집에 '여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충실히 계절을 즐기기에는 참...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단독주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여름인데 역대 최장 장마라니. 7월만 해도 거실 창에서 마당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걸 보며 '빗물 멍'에 빠지기도 하고. 야리야리한 유칼립투스 이파리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이뻐 한참 구경하고. 마당 처마 아랫자락서 흙냄새도 실컷 맡았는데. 바쁜 와중, 그러면서 집을 즐기고 여름의 로망을 즐겼는데. 어라? 비가 당최 그치지를 않는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장마가 이젠 끝나나 싶었더니 코로나19가 다시 몰려오고. 이어진 태풍 소식에. 태풍 끝났는데 왜 또 비? 그냥 내리는 비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시원한 빗방울도 아니고, 미운 놈 뺨 때리는 듯 쏟아지는 폭우와 곰팡이를 부르는 높은 습도에 지칠 때쯤 되니, 아. 9월이다. 이렇게 여름이 다 가버렸다.


잠시 보면 낭만적. 계속 내리면 호러물.


하루, 이틀 사이 (잠시) 비가 그쳐서 마당에 나가 보니 가지가 앙증맞게 2개 매달려 있다. 귀여워서 두고 보다가 태풍 오기 전날 따서 들어왔다. 부족한 대로 즐겼던 고추, 방울토마토도 이제 끝난 거 같으니 저 자리에 가을에 볼 야생화를 좀 사다 심을까 했는데 이 역시 계속된 비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단독주택에 이사 가면 꼭 해주고 싶었던 게 뀨 마당 수영장. 물 마를 날이 없는 날씨에 새로 장만해주지는 못했지만 예전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 번 쓰고 말았던 자그마한 '베란다 수영장'을 설치해줬다. 물을 받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물이 쉽게 더러워져서 큰 수영장 들이기는 만만치 않겠다 싶다. 크기가 뭐가 중요하랴. TV를 끄고 마당으로 나온 아이가 '물이 너무 차갑다' 면서 '꺆' 소리를 지른다. 깔깔 웃는 소리, 나한테 물을 뿌리며 장난치는 소리, 알 수 없는 주문을(변신! 출동!! 이그미네이션??? 합체!!! 지금이야!!!! 따위...) 외치는 소리가 마당과 집에 온통 울려 퍼진다. 어린이집도 못 가고 종일 집에 있는 뀨가. 이 안쓰러운 '요즘 아이'가. 고난의 시기를 잘 넘기고. 계속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느 날은 수영장 물을 안 빼고 잤더니 새벽에 (또) 세콤 경보음이 울려댔다. 남편이 창 밖을 확인해 보니 동네 고양이 두 마리가 수영장 물을 퍼마시고 있었다. CCTV를 돌려보니 역시나 어둠 속에 빛나는 눈동자들. 수영장 물을 바로바로 빼야겠구나 싶으면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장마의 틈새, 여름 한 컷.


아파트였으면 중간중간 보일러를 한 번씩 돌려 습기를 날리거나. 수시로 에어컨을 켜 놓고 온도 조절을 했을 텐데. 천장이 높은 단독주택에 살다 보니 습도 관리가 쉽지 않다. (에어컨을 종일 틀고 있자니 전기세가 무시무시할 것 같아서) 낮에는 너무 습하고 더울 때만 에어컨을 한 번씩 켜거나 방 하나만 시원하게 해 놓고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미숫가루를 타 먹고, 각자 책을 읽기도 하고,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태풍이 온다는 날은 다락방 유리창이 날아갈까 봐 조마조마해서 밤새 거의 잠을 못 잤다. (다행히, 당연히- 별 일 없었다. 역시, 집을 구할 땐 꼭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해야- 싶었다.) 남편과 자주 '아파트 살 때는 덜 더웠었나? 아파트 살 때는 더 편했었나? 아파트 살 때는 어땠지?' 대화를 나누지만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독주택에서 여름을 나는 게 조금 더 덥고 습하고 힘든 거 같으면서도. 그냥 '더 진하다' 싶은 정도다.   


그 지독한 장맛비 틈새에서도 한 나무에 5마리 6마리씩 붙어 목놓아 울던 매미들이 껍질만 남기고 거의 다 사라졌다. 귀뚜라미 소리가 커졌다. 이렇게 단독주택에서 맞은 첫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냉동실에는 아직 얼려놓은 옥수수가 남아 있는데. 여름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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